[2019 철도안전 현주소] ②반복된 안전계획 실패..."탈선은 끝나지 않았다"
[2019 철도안전 현주소] ②반복된 안전계획 실패..."탈선은 끝나지 않았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01.03 0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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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 안전강화 원년 40여명 철도 위 이슬로
연이은 코레일 사고에도 '땜질식 처방만 되풀이'
지난달 8일 발생한 강릉발·서울행 KTX 탈선사고 현장에서 관련 내용을 브리핑 중인 (왼쪽부터)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정렬 국토부 제2차관.(사진=국토부)
지난달 8일 발생한 강릉발·서울행 KTX 탈선사고 현장에서 관련 내용을 브리핑 중인 (앞줄 왼쪽부터)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정렬 국토부 제2차관.(사진=국토부)

지난달 KTX 열차가 탈선했다. 최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열차가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철도와 안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여야 하지만, 철길 위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인재는 오히려 철도와 사고 사이의 끈끈함만을 반복적으로 확인시켰다. 안전은 왜 철도와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할까?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져버린 철도조직과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위험의 외주화', 그리고 늘어나는 선로 길이를 따라잡지 못한 후진적 안전관리체계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편집자주>

정부가 '국토교통 안전 강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던 지난해 40명이 넘는 이들이 철도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5년 단위·연 단위 철도안전계획이 줄을 잇고 있지만,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강릉선 KTX가 탈선한 뒤 정부는 20일 만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안전불감증이 팽배한 코레일의 조직문화와 안전 외주화 등 근본적 문제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 중장기·단기 대책은 수두룩

3일 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총 93건의 철도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42명이 사망했으며 47명이 중상을 입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사고는 2건이 늘었고, 사망자는 4명이 줄었다.

정부는 지난해를 국토교통 안전 강화의 원년으로 선포했지만, 철도 안전은 사실상 나아진 것이 없었다.

더욱이 지난달에는 KTX 열차가 주행 중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지난 11월에는 오송역 단전사고로 많은 열차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철도 안전에 심각한 균열이 일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철도안전 강화대책'을 내놨다.

국토부는 최근 발생한 사고 및 장애가 시공불량 또는 작업 기본원칙 미준수, 차량 정비 소홀 등 대부분 인적 과실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다며 안전대책의 현장 이행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5년 단위 '철도안전 종합계획'과 연 단위 '철도안전 시행계획'을 가지고도 근본적인 철도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던 국토부가 강릉선 KTX 사고 발생 약 20일 만에 만들어낸 대책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실제 이번에 국토부가 내놓은 대책 중 △철도안전대책 현장 이행력 제고 △철도차량 관리 강화 △사람 중심 사고 대응체계 구축 등과 관련한 내용은 큰 틀에서 지난해 4월 발표한 철도안전 시행계획과 유사하다.

또, 제3차 철도안전 종합계획(2016~2020년)에는 사실상 이번 대책 내용이 대부분 담겨 있다.

최근 사고들이 대책의 부재로 인한 것이기 보다 코레일 등 철도운영사의 실천력 부족과 국토부의 관리 소홀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달 8일 오전 탈선한 채로 누워있는 강릉선 KTX.(사진=연합뉴스)
지난달 8일 오전 탈선한 채로 누워있는 강릉선 KTX.(사진=연합뉴스)

◇ 경영효율화·밥그릇 챙기기에 밀린 '국민안전'

철도업계 내부에서는 정부기관부터 일선 작업자까지 팽배한 안전 불감증과 이를 가능케 한 철도조직 문화를 우선 뜯어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레일은 경영효율화와 부채 감축 등을 이유로 안전 관련 업무의 상당부분을 외주화 하고 있고, 일선 현장에서는 국민 안전을 위한 사명감 보다는 노조 권력 하에 권리 찾기가 우선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이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폐쇄적 철도문화 속에서 잘못을 수면 위로 드러내려는 시도를 할 경우 배신의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제 진짜 사명감을 얘기 하는 것은 지났고, 현장에 안전 불감증이 팽배해 업무가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저도 참 조심스럽습니다만, 누가 어떤 얘기 했다고 하면 이 시장에서 매장 당한다"고 말했다.

철도 현장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부의 이번 안전대책은 여전히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했다. 안전 업무가 외주화돼 있고, 이조차 비정규직에 맡겨지고 있는 것이 철도 안전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 국토부의 인식이다.

국토부 철도안전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정부 정책에 따라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은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지 우리 철도 안전하고 그것은 관계가 없다"며 "내부 직원들 근태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차원의 안전 계획이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기존에도 대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말초신경까지 다 전달이 안되니까 이번 대책은 그것을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내용을 좀 더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가 지난해 4월 확정 발표한 '2018년 철도안전 시행계획'상 주요 추진과제 목록.(자료=국토부)
국토부가 지난해 4월 확정 발표한 '2018년 철도안전 시행계획'상 주요 추진과제 목록.(자료=국토부)

한편, 국토부는 지난해 철도안전 시행계획을 확정하면서 대형사고 제로화와 최근 3년 대비 철도사고 15% 감소, 철도 사망자 5% 감소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KTX가 강릉선을 이탈하는 순간 목표 달성은 어렵게 됐다. 국토부는 대형사고의 기준을 '사망자 5명 이상'으로 제시했지만, '고속철도 대형사고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르면, 고속열차의 경우 24시간 이상 열차 운행 중단이 예상되거나 사회적 물의가 크게 예상되는 경우 대형사고로 본다.

다행히 강릉선 KTX 탈선의 경우 고속구간이 아닌 곳에서 발생해 사망자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뻔한 아찔한 사고 였다.

48시간 가까이 열차 운행이 중단된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께 송구하고 부끄러운 사고"라고 언급한 것은 물론,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등 사회적 파급력도 컸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