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10대 가수 단골손님 중 김상진씨라고 있다. 곱상한 외모에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일품인 김상진씨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정표 없는 거리’인데, 그 가사를 보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하면서, 갈 곳도 모르고 선택하기 어려운 인생길을 노래하고 있는 명곡이다.
지금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의 심정이 바로 이정표 없는 거리의 노랫말과 같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유승민 의원은 소위 금수저 출신이다. 재선의원을 지낸 그의 부친 유수호 전의원은 유신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판사재임용에 탈락하고 마는 강골법조인 출신이다. 그의 모친은 한동안 아들 유승민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매일 아침 치성을 드린다는 애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유승민 의원이 정치권에 진출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 유학을 마친 후 KDI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 부친의 소개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나게 되면서 유승민 의원은 부친의 대를 이어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대구가 보수의 심장이라서 그런지 유승민 의원의 정치 생활은 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표 시절, 초대 비서실장이라는 직함은 그의 정치 인생이 탄탄대로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기도 했다.
그러던 유승민 의원에게 가시밭길이 시작되는 사건은 아이러니 하게도 여당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이었다.
2015년 7월 유승민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작심한 듯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이다’라는 대목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기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는 강화하되, 증세를 하는 대신 지하자금 양성화, 정부 예산의 긴축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보수 우파의 경제관에서 보면 박근혜 식 해법이 맞고 유승민 식 해법은 틀린 말이다. 현대 국가에서 복지 강화는 시대적 추세이나,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라도 복지를 강화하자는 것은 진보좌파의 경제관이기 때문이다. 유승민 의원이 보수적 가치를 지닌 정당의 대표라면 증세를 거론하는 대신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방법이 왜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냐고 따졌어야 옳았다.
어찌 됐든 이 연설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었고, 그 결과가 새누리당 공천 파동으로 이어져 새누리당은 원내 다수당 지위를 잃게 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까지 연결된다.
탄핵이후 유승민 의원은 김무성 의원등과 함께 바른 정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6.8%라는 처참한 득표에 그치고 말았으며, 다시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당대당 통합으로 바른미래당을 출범시켰으나 정의당보다 못한 한자리수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승민 의원은 고심이 깊어가고 있다. 그가 추구하던 개혁적 보수의 아이콘이 아닌 배신자 프레임에 갖혀 지역구인 대구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을 고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일단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은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남아있자니 차기 총선조차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이래저래 이정표 없는 거리에 서 있는 심정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