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下] 시장 옥죄기 부작용 확인…"주거안정, 공급으로 풀어야"
[규제의 역설-下] 시장 옥죄기 부작용 확인…"주거안정, 공급으로 풀어야"
  • 황보준엽 기자
  • 승인 2018.12.3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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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숨바꼭질하는 수요, 기회만 되면 서울 집중
공공임대 확대 통해 '충분한 주택 물량 확보' 우선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가운데)이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김재환 기자)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가운데)이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김재환 기자)

현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집값 잡기'를 선언하며 부동산시장에 칼을 들이댔다. 특히, 강남권 중심으로 날뛰던 서울 집값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매서웠다. 이 같은 정책 기조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20개월 동안 총 8번에 달하는 규제 중심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적표는 초라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물가 상승세를 넘어 비정상적으로 폭등해버린 '서울 집값'의 현주소와 남은 과제를 살펴본다.<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하에서 서울 실질주택가격 상승률이 직전 박근혜 정부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현 정부의 '시장 옥죄기'식 부동산 정책이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주택 수요층의 쫒고 쫒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며, 서울 집값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서는 수도권 중심 공공임대 확대를 통해 충분한 주택물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결국 공급카드 꺼내든 정부

31일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 30만호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서울 집값 안정' 측면에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5월 출범 후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을 펼쳐오던 정부가 다소나마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한 기대감도 섞여 있다.

장성대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부동산학 교수는 "정부가 이제라도 공급을 통해 집값을 조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수도권 공급 확대 정책은 입지 등을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인구의 19%가 살고 있는 서울 집값을 안정시켜야만 국민 주거 안정이 실현될 것으로 여겼고, 실제 부동산 정책의 모든 역량을 서울 집값 잡기에 집중하다시피 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출범 후 19개월간 서울 실질주택가격상승률이 직전 박근혜 정부 4년간 상승률에 비해 5배나 높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빚내서 집사라"를 외치며 부동산 자산 부실규모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전 정부때보다도 "주거 안정"을 외치고 있는 지금 정부에서 서울 집값이 더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규제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공급을 통한 주거 안정 방안을 찾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요정책 뿐이었고, 어떻게 보면 주택가격 상승은 현 정부 출범 당시부터 예견됐던 것"이라며 "요동친 주택가격을 잡으려면 입지가 좋은 곳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원구의 한 LH 아파트 단지.(사진=신아일보DB)
서울시 노원구의 한 LH 아파트 단지.(사진=신아일보DB)

◇ 적재적소 임대주택이 답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대 수요가 풍부한 적재적소에 공급을 늘림으로써 주거에 대한 불안심리를 가라앉히고, 주택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는 완충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시장이 안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해 중장기적으로 주택가격 변동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도하게 규제하면 시장에 피해가 누적되는 만큼,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답"이라며 "아무 곳에나 임대주택을 늘려선 소용이 없고, 입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의 경우 신규아파트 구매 수요가 꾸준한 만큼 일반분양주택이 적정 수준 공급될 수 있는 시장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함영진 다방 빅데이터 랩장은 "임대주택으로만 확대하게 되면 박근혜 정부 시절 '행복주택' 사업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며 "'내 집 갖기'가 재산권 형성에 중요한 요소인 만큼 분양 물량도 일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서민층과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택구입 지원 차원에서 대출 규제책을 일부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규제가 실제 서민층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며 "현재의 대출 규제를 전부 원점으로 돌리거나 수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가계대출 창구.(사진=신아일보DB)
서울의 한 시중은행 가계대출 창구.(사진=신아일보DB)

한편, 전문가들은 정부가 3기 신도시를 활용한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펴는 동안 시장에 유입될 대규모 토지 보상금의 흐름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지보상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집값을 끌어올리는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만 해도 전국 토지보상금 규모가 25조원에 달한다는 집계가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3년 평균의 2배가 넘는 금액이며, 지난 2009년 4대강 사업 등으로 34조8000억원을 기록한 이래 최대다.

변세일 센터장은 "토지보상금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있어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며 "대토보상을 확대해 부동산 시장 자금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황보준엽 기자

hbjy@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