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 부도의 날…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기자수첩] 국가 부도의 날…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 이서준 기자
  • 승인 2018.12.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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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대 후반 불어닥친 IMF 사태를 조명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꾸준히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당시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사회심리만큼은 현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관객들에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연일 들려오는 기업들의 부도 소식, 굳게 닫힌 회사 철문, 길바닥에서 오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무섭게 느껴진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도 물건을 아껴쓰고, 과소비 하지 말 것을 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기억이 있다. IMF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돈이 없으면 망한다’는 인식만큼은 어린 학생들의 뇌리에까지 깊숙이 전달됐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IMF 사태 때 없어진 것은 돈 뿐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함께 잘살아 보자’며 급속도로 성장한 우리나라는 IMF 사태라는 성장통을 겪으며 ‘나부터 살고보자’라는 사회로 변했다. 특유의 情 문화도 없어진 것이다.

IMF 사태 이후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어려워질 때마다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 하청과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갑’의 횡포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회사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갑을 위해 일하는 ‘을’들의 처지는 사소한 것이 됐다는 생각이다. 

결국 갑과 을의 양극화는 심화됐고 내 것은 내어주지 않으면서 네 것을 빼앗아 오는 자가 승자가 되는 삭막한 사회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에는 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회사사장이 등장한다. 직원들에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직원들의 월급이 밀릴까 노심초사하던 그 사장은 IMF를 겪은 이후 외국인노동자를 부리며 “똑바로 일하란 말이야!”라고 윽박지른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어쩌면 국가 부도의 날은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돈이 아닌 情의 부족으로 말이다.

[신아일보] 이서준 기자

ls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