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오전 회의를 마치고 점심 미팅이 있는 강릉으로 출발하기 위해 서울역을 향했다. 강릉행 KTX에 몸을 싣고 1시간 50분만에 동해바다가 보이는 강릉에 도착,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티타임까지 갖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시간이 4시가 채 안됐다.
강릉KTX로 인해 동해안을 반나절 되는 시간안에 다녀올 수 있게 됐다. 1년 전 강릉KTX가 본격적인 운행을 개시 한 후 우리에게 다가온 일상생활의 모습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시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편리성을 더해준다. 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술의 혜택이 한순간의 안일함으로 인해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오전 강원도 강릉에서 197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로 떠난 KTX열차가 선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것은 출발한 지 5분만에 난 사고라 열차 속도가 낮았고 객차끼리 구조적으로 연결 돼 인명피해가 16명 부상에 그친 것이다. KTX의 최고 속도로 달렸을 때 사고가 발생했었다면…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 했다.
당시 코레일 오영식 사장은 사고원인으로 ‘기온 급강하’를 언급했다. 원인을 애꿎은 날씨 탓으로 돌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오영식 사장은 결국 취임 10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오 사장은 임명 당시 야당으로부터 철도 전문가가 아닌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다.
밝혀진 사고 원인은 열차가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선로전환기였다. 선로전환기는 철도의 핸들로 불린다. 레일을 이리저리 움직여 철도의 길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 기기에 장애가 발생하면 레일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아 열차가 탈선되는 대형사고의 위험이 있다.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선로전환기가 설치된 곳에는 자동경보장치 시스템이 있다. 즉 선로전환기가 오작동하면 자동경보기가 이를 감지해 사전에 통보한다. 사고 당일 이 경보기는 선로전환기의 이상을 감지하고 경보음을 울렸다. 이에 보수 직원이 선로를 확인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유는 자동경보기 연결이 처음부터 잘못돼 있었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감지기가 서로 뒤바껴 있었던 것이다. 설계 도면에서 부터 잘 못 그려져 있었다고 하니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기본이 되는 설계부터가 잘못돼 있었고 그 오류를 이번 사고로 확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보회의에서 "우리의 일상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근본적 불신을 국민에게 줬다"면서 "우리의 교통 인프라가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마당에 민망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철도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관계 부처에 고강도 대책을 주문했다.
재발 방지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사고 매뉴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기본원칙을 지켰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
‘베는 석 자라도 틀은 틀대로 해야 된다’ 라는 속담이 있다.
불과 석 자짜리 베를 짜려고 해도 베틀 차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사소하거나 급하다 하여 기본 원칙을 무시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리 속담이다.
앞으로 남북을 잇는 철도 사업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업성공의 관건은 기본과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달려 있다. 이번 KTX 탈선 사고를 잊지 말고 초기 진행부터 기본에 충실한 설계가 동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