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되지 않아도 생명 위험하면 '인도적 체류' 허가해야"
"난민 인정되지 않아도 생명 위험하면 '인도적 체류' 허가해야"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8.12.16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인도적 체류 첫 허가 판결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인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안전 등의 이유로 한시적으로 국내에 머물게 해주는 제도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국내에 1년 거주하게 되고, 매년 다시 심사를 받아 체류 기간을 1년씩 연장할 수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이승원 판사)은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인정 처분을 받은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2016년 2월 20일 단기 체류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A씨(시리아)는 입국 다음 날인 21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시리아가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매우 위험하다"며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박해를 받게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있는 공포'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난민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어야 한다.

이에 A씨는 "이대로 돌아가면 정부군에 징집돼 전쟁에 참여하다 죽을 수 있다"며 정부의 난민 인정 불허에 대한 취소 소송을 냈다.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 인도적 체류라도 허가해 달라고도 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소송 과정에서도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또 난민 신청자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신청할 권리가 없고, 해당 사항이 행정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A씨가 애초부터 난민 신청만 했을 뿐 인도적 체류 허가를 요청하지 않은 데다 난민당국 역시 A씨에게 인도적 체류를 불허한다는 처분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다툴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를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3년 가까이 군복무를 했고, 반정부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며 "A씨가 자신의 나라에서 종교적,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았거나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A씨의 징집 거부는 단순히 병역에 대한 반감이나 전투에 대한 공포의 수준이지, 이를 넘어 진실한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난민불인정 처분은 적법하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인도적 체류는 허가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난민인정 신청을 한 것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인도적 체류라도 허가해 달라는 의사표시가 포함된 것"이라며 "난민인정 신청권은 인정하면서 인도적 체류 허가 신청권이 없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가 내전 중인 자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A씨의 난민 신청과 관련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되, 인도적 체류에 관한 청구는 받아들인다"고 했다.

[신아일보] 고아라 기자

ar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