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사례관리가 뭐길래
[독자투고] 사례관리가 뭐길래
  • 신아일보
  • 승인 2018.12.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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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승 동두천시 복지정책과 주무관
김만승 동두천시 복지정책과 주무관

요즘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는 사례관리가 대세라고들 말한다. 외부 자원으로 연계되는 후원기관에서조차 지원대상을 사례관리 대상가구로 한정짓는 것을 보더라도, 사례관리의 위상이 꽤 높아졌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리고 사례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사회복지를 좀 했다는 사람이면 알고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사회복지를 한다는 곳에선 사례관리를 말하고, 사례관리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화되는 지역사회보호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케어(commnunity care)도 사례관리가 접목된 실천모델이다.

사례관리가 뭐길래 그럴까. 사례관리(case management)란 사례관리사가 복잡한 문제 및 욕구를 가진 대상자를 지역의 다양한 자원 발굴 및 연계를 통해 대상자와 함께 그 문제 및 욕구를 통합적으로 조정, 해결해 나감으로써 대상자 스스로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사회복지 실천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정의만큼이나 사례관리는 힘들고 지난한 작업이다. 유·무형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종종 사회복지를 하다 보면 내가 주고 싶은 것 하나만 달랑 지원하고, 고맙다는 인사말 정도 듣고 끝내는 사회복지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대상자에게 상처받지 않고 가슴 한 켠 뿌듯함 하나를 보물처럼 간직한 채 ‘고매하고 우아한 사회복지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말이다. 하지만 고매하고 우아한 사회복지란 없다. 그 실천으로 인해 결과가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회복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례관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가시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우울을 동반한 알코올의존증이 보이는 분을 사례관리서비스로 도와드린 적이 있다. 상담과정에서 지원이 힘들 것 같은 분위기가 짙어 지면, 이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자살 협박을 비롯해 시장 면담, 정보공개청구 등 알고 있는 온갖 방법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입에서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한두 시간가량 이어지면 심적인 부담과 정신적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부담은 어느 순간, 어떤 상황으로 터질지 모르는 폭력적 상황이었다. 상담 중에 농담처럼 과시하는 복싱으로 다져진 자신의 근육과 주먹자랑은 결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지원 가능한 자원을 알아보겠노라하며 대상자를 간신히 달래고 상담을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올 때면, 심신은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뒤였다. 사례관리가 진행되는 내내 책임과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바위가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례관리를 진행하는 동안 내 안에도 갈등이 많았다. 이렇게 힘들 거라면 차라리 대상자를 내버려둔 채 상황이 악화되도록 만들어, 교도소에라도 들어가 치료감호를 받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병원치료를 계속 권유해 조금이라도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결국 이 분은 줄기찬 병원치료 권유와 일정치 않은 주거 불안으로 입원치료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2주가량 병원 재활치료를 받다 의사와 마찰을 빚고 비록 자진 퇴원을 했지만, 지인의 도움을 받아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례관리는 이런 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행에 수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쉽지는 않다. 좋은 일이지만 사례관리사가 소진될 수밖에 없는 필요악적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나는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의 소진된 심신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치유하려 노력한다. 소위 말해 자가치유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시를 쓰거나, 길지 않은 단상을 써보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도 한다. 사례관리사가 놓쳐선 안 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 우연히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접한 후, 지난 여름부터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라는 책을 골라 자칭 '영어책 한 권 외우기 프로젝트'를 나만의 소진예방책의 일환으로 100일을 목표로 도전했다. 외웠던 내용을 까먹기 일쑤여서 목표달성에 미치지 못했지만, 외국영화를 볼 때 가끔 관용적인 표현들이 귀에 들어올 정도의 소기 목적은 이루었다는 자평이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아주 쉬운 표현이 하나 있는데, 사례관리를 진행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It's now or never.(지금 아니면 안돼.)

사례관리를 진행하면서 대상자가 조금 더 좋은 만남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비록 앞으로의 삶이 불확실하고 순탄치 않을지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랐다. 그 긍정적 경험이 쌓이고 쌓여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다음이 아닌 지금,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상담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권유하고 또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 대상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비롯한 사회복지 실천가들을 위해 한마디 위로를 건네고 싶다.

Once you get the hang of it, it's just a matter of time.

(일단 감을 잡으면, 단지 시간문제야.)

쉽진 않겠지만 붙들고 애쓰다보면, 시간이 보상해줄 것이라 믿는다. 영어회화 좀 공부했다고 떠드는 치기어린 자랑질이 아니다.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김만승 동두천시 복지정책과 주무관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