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대책을 기다리며 발만 동동거리는 학부모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처음 비리가 온 천하에 공개됐을 때만해도 해를 넘기면서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 여기도 걸렸구나, 앞으로는 더 조심 하겠네’라는 시선으로 비리유치원 명단을 살펴봤던 그 때의 내가 어리석었음을 이제와 새삼 느끼고 있다.
전국적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아모집이 한창일 때다. 보통의 12월 초였더라면 온갖 곳에서 진행하는 입학설명회로 분주했을 터인데 올해는 조용하다.
해가 바뀌면 다섯 살이 되는 딸아이를 유치원으로 옮길까 하다가 마음을 접은 것도 여기에 있다.
폐원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지는 않았지만 지역 내 대다수 유치원들이 전체적으로 원아 확대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일단 보내던 어린이집에 재원 통보를 해뒀기에 불안한 마음을 덜하지만 주변에는 유치원 폐원으로 골치를 겪는 일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경기도 하남에서는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유치원들은 더 이상 원아모집을 하지 않고 있으며 내년 2월말 이후 폐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뚜렷하게 나온 것은 없다. 미온적인 대처방식에 지친 학부모들이 결국 협동조합 유치원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지역 내 모든 유치원이 폐원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한두 곳의 문제로 왜 학부모들이 나서는지 이해를 못하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고작 5~7살 된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환경, 낯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과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많은 부모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100명의 원생이 다니는 A유치원이 폐원했다고 그 원에 다니는 100명 모두를 흡수할 수 있는 B유치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B유치원에 10명, C유치원에 20명, D유치원에 15명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흩어져야 한다. 더욱이 이 모든 상황은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원한 바가 아니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를 유치원으로 옮기기 위해 새로운 환경으로 적응시키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문 닫은 유치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겨야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대책을 고심 중에 있다고만 말하고 있다. 물론 불법 폐원할 경우 좌시하지 않고 엄단한다고 경고장도 날렸다. 하지만 건강문제,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폐원을 고집하는 원은 계속 늘고 있다.
폐원을 고집하는 원장들을 엄벌하고 수사하는 것은 좋다.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지쳐가고 있다. 내년 3월부터 갈 길 잃은 아이들에게 협동조합 유치원이 대책이 될 수 있다면 설립할 수 있는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물론 무작정 열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 유치원의 경우 부모나 교사가 조합원으로 참여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설립자가 되는 것이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으로부터 부지와 건물을 빌려 유치원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곳의 허가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 전국적으로 폐원 선언을 한 유치원이 단 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내년 3월부터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수도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빠른 대처와 지나친 관심이 아이들을 지키는 데 보탬이 된다면 과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