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토부, 지진·화재 위험요인 전수조사 '없던 일로'
[단독] 국토부, 지진·화재 위험요인 전수조사 '없던 일로'
  • 김재환 기자
  • 승인 2018.12.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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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천 사고 방지 대책, 소방청과 겹친다며 뒷걸음
단독주택·아파트 등 기존 건축물 사각지대 방치 우려
국토부 관계자 "인구 총조사도 아니고…우선순위 아냐"
 
지난해 11월14일 경북 포항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파손된 필로티 구조 건축물 기둥(왼쪽)과 같은 해 12월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14일 경북 포항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파손된 필로티 구조 건축물 기둥(왼쪽)과 같은 해 12월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모습.(사진=연합뉴스)

"건축물은 지진·화재 위험요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정보를 공유하고 보강비용 금융지원, 저비용 보강기술 개발·보급 등을 통해 단계적 보강을 유도할 계획"

포항 지진·제천 화재 후 '기존 건축물 위험요인 전수조사'라는 그럴싸한 대책을 내놨던 국토부가 대책 발표 약 5개월 만에 소방청 조사와의 중복 등을 핑계로 계획을 전격 취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수조사 범위가 소방청의 제한적 조사로 축소되면서 단독주택과 아파트 등 기존 건축물이 안전 사각지대에 고스란히 방치될 위기에 놓였다. 스스로 전수조사 얘기를 꺼냈던 국토부는 이제 와서 "인구 총조사도 아니고, 우선 순위도 아니다"는 식의 변명거리를 찾기 바쁜 모습이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계획했던 '필로티·가연성 자재 건축물 전수조사'를 시행하지 않기로 지난 6월경 최종 결정했다.

이 계획은 지난 1월23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민안전 재난·재해 대응 정부합동보고'에서 나왔다. 당시 국토부는 지난해 발생한 포항 지진과 제천 화재사고 등을 계기로 '지진·화재·교통 분야 안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고를 키운 문제점으로 지적된 필로티 구조 및 가연성 자재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전수조사를 통해 기존 건축물도 빈틈 없이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 같은 계획을 내놓은 후 5개월여 만에 돌연 입장을 바꾼다. 지난 2월 청와대가 주관해 출범한 화재 대응 범부처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소방청 주관으로 전국 화재안전특별조사(이하 특별조사)를 실시키로 했는데, 이것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전국 약 700만동 중 500만동에 이르는 건축물에 대한 위험요소를 파악할 방법이 없어졌다. 소방청이 오는 2022년까지 실시할 예정인 특별조사는 소방청 담당 소방시설물과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일부 공동주택·고시원 등 전국 총 200만동을 대상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별조사에는 단독주택이 단 한 동도 포함되지 않으며, 재난 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대부분과 사람이 거주하지만 비주택으로 분류되는 근린생활시설 상당수도 조사에서 제외돼 있다. 

국토부는 소방청 특별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건축물에 대해서도 별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행정효율성을 이유로 내세웠다.

국토부 건축정책과 관계자는 "소방청이 특별조사를 하는데, 우리가 별도로 전수조사해서 일선 행정력을 분산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행정 우선순위에도 벗어나는 일"이라며 "700만동을 다 조사하라는 것은 이것만 하라는 얘기인데, 고위험 건축물을 족집게로 처방해야지 제너럴하게 인구 센서스도 아니고, 그럴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지난 1월31일 발표한 '2018년 업무계획' 중 일부.(자료=국토부)
국토부가 지난 1월31일 발표한 '2018년 업무계획' 중 일부.(자료=국토부)

한편, 전문가들은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전수조사로 기존 건축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위험요소별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건축물의 경우 그동안 발생한 재난을 계기로 점차 강화돼온 안전기준을 소급 적용받지 않아 신축 건축물보다 재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유용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연구위원은 "행정력이 부족하더라도 (기존 건축물에 대한) DB가 구축돼 있어야 어떤 유형의 건축물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당장이 아니더라도 4~5년간 장기적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jej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