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능, 끝이 아닌 시작
[기자수첩] 수능, 끝이 아닌 시작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8.11.1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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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바늘을 돌려 군 복무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갈 수 있겠다. 그러나 수능 수험생으로 가라고 하면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그만큼 수능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1년 늦가을 수능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과 그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굳이 채점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결전의 날이 허무한 결과로 끝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길 위에는 나 혼자 있는 것 같았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는 그 하루가 내 모든 인생을 결정지을 것만 같았다. 오늘 시험장을 빠져나올 많은 수험생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수능은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진짜 나의 인생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내 인생은 결코 수능점수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대학교 간판이 점수에 따라 정해지고, 시험을 잘 치렀다는 것은 그만큼 학습능력이 높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대학이 인생에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고, 고교 시절의 학습능력은 절대 사회생활능력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성공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 동료 및 주변인들과의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조차도 나 혼자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결혼생활로 넘어가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어쨌든 시험은 치렀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했다면, 일단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자. 점수가 잘 나오면 당연히 기쁠 테고, 아쉬운 결과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한동안 기쁨을 만끽하고, 실망감에 괴로워한 후에는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 위에는 수능보다 더 어려운 시험이 수두룩하다. 앞으로 수 없이 많은 순위 바뀜이 일어날 것이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진짜 자기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을"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