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의 물음 두 번째 이야기]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사생아, 볼모사회
[김현성의 물음 두 번째 이야기]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사생아, 볼모사회
  • 신아일보
  • 승인 2018.11.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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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논설위원
 

# 보육볼모 : ‘우리가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있다’

올 것이 왔다. 사립유치원 비리 말이다. 유치원 예산으로 명품 백이나 성인용품, 콘도미니엄 회원권 등 개인 물품을 사고, 운영비로 원장 개인의 저축보험금, 종합부동산세, 동창회비, 경조사비를 냈다. 교재비를 부풀려 예산을 횡령하지 않은 유치원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사립유치원은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사립유치원에도 누리과정 예산으로 연간 2조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세금을 원장들 쌈짓돈으로 쓰라고 지원한 것이 아니다. 학부모로부터 받은 원비를 개인 돈처럼 써도 문제가 될 진데, 하물며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된 돈을 사비로 쓴 것이니 백번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국공립 유치원 원아모집 접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학부모 부담금 없이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유치원에 지원하시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울산 A유치원 학부모 진급신청 안내문이 조롱과 협박으로 읽히는 것은 필자의 과민함 탓은 아닐 것이다. 비리 공개 후 학부모 편의를 위해 만든 온라인 플랫폼 ‘처음학교로’ 등록거부, 폐원협박 등 몽니와 적반하장이 도를 넘고 있다. 사실 사립유치원 비리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마음과 내 아이에게 혹여 해가 될까하는 마음에 쉬쉬했다. 결국 해 맑은 아이들은 위기 때마다 사립유치원의 볼모가 됐고, 볼모로 삼았다. 

# 요양볼모 : ‘우리가 당신의 부모님을 데리고 있다’

우리사회 볼모가 된 것은 아이들뿐이 아니다. 이번에는 요양원 비리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의 고발로 알려진 요양원 비위 실태는 유치원을 뺨친다. 경기도의 한 요양원장은 정부 지원금으로 벤츠 승용차를 몰고, 골프장을 드나들며 7700만원을 유용했다. 심지어 나이트클럽 술값과 해외여행비까지 충당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 다른 요양원장은 성형외과 진료비와 유흥비, 손자 장난감 구입비를 요양원 운영비로 썼다고 한다. 가히 몰염치의 끝판왕감이다. 비리 요양원 원장들은 ‘자식들이 부모님이 계신데 감히 건드릴 수 있겠어’ 했을 것이다. 나이든 부모님은 그들 비리의 볼모였다. 

보건복지부가 상반기 전국 1000개 민간 시설을 조사한 결과 94%에서 부당행위가 적발됐다. 어르신 수발에 써야 할 세금이 줄줄 새고 있었다.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한 2008년 이후 회계감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니 명백한 직무유기다. 어르신들에 대한 효도를 국가가 대신해준다며 매달 꼬박꼬박 걷어간 보험료가 나이든 부모님을 볼모로 삼은 요양원장 쌈짓돈이었다니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고용볼모 : ‘내가 당신의 밥줄을 쥐고 있다’

<뉴스타파>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30일과 31일 잇달아 공개한 동영상이 우리들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전 직원의 뺨과 뒤통수를 때리고 무릎을 꿇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임직원들에게 색색의 머리 염색을 시키는가 하면, 닭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워크숍 장면도 공개됐다. 동영상에서 양 회장은 “살려면 무릎 꿇어”라고 소리친다. 곁의 한 사람만 말리려 할 뿐, 다른 직원들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동영상을 보고 말리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원망 섞인 댓글도 있지만 밥줄 앞에서 누가 감히 나설 수 있었을까 싶다. 

아이들과 나이든 부모님, 구직자의 약한고리를 볼모로 삼아 ‘누가 감히 폭로하겠냐’는 오만함과 특권의식이 볼모사회를 키웠다. 혹여 내 아이와 부모님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과 내부 고발자들의 고발이후 척박하고 차디찬 삶이 불의를 보고도 침묵을 선택하게 만든다. 침묵의 카르텔이 볼모사회를 키우고 있다. 

‘볼모 : 대립되는 두 세력 사이에 항복, 우호 관계 등을 보증받기 위한 방법으로, 상대쪽 사람을 머무르게 했던 일’. 포털 백과사전의 정의다. 불신이 키운 괴물이 볼모사회다. 불신과 불공정이 볼모사회를 만들었고, 볼모사회는 불신과 불공정을 키운다. 악어와 악어새 같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과 생활 보호에 대한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선의와 신뢰의 관계를 특권의식으로 활용하는 볼모범죄, 비리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우리 모두 신뢰사회의 볼모가 돼야 한다. 

/김현성 논설위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