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겸 탄소문화원장 인터뷰
114조 원대 누적 부채에도 '대통령 공약' 앞세워 '돈잔치' 추진
전교생 무료교육에 교수연봉 3배, 100만 달러 총장 영입 약속
설립 땐 기능연수원 수준 불 보듯…김종갑 사장, 자리 내놓아야
"한전공대 설립처럼 어설프고 탈법적인, 또 비현실적인 정책 제안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인재 양성의 뜻을 제대로 알고 추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대통령 공약사항이란 점만 내세워 한전이란 조직이 미천하고 알량한 상식으로 만들어 놓은 공허한 이야기다. 한전이 정권의 눈치만 보는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청하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겸 탄소문화원장은 11일 신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력공사 김종갑 사장이 오는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에너지 특화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 교수는 “한전의 대학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전문성 결여, 현재 한전이 겪고 있는 경영 악화도 대학운영의 능력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은 올 상반기 1조2000억 원의 적자에 3분기 연속 적자, 누적부채 114조원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전공대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한전의 구체적인 구상은 이렇다.
우선 한전공대는 학부 400명과 대학원생 600명, 교수진 100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학생들에게는 입학금과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고 재학생 전원에게 기숙사 무료 제공할 방침이다. 교수진에게는 기존 과기원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약 4억 원의 연봉을 보장한다.
특히 연봉 100만 달러(한화 약10억 원)를 들여 ‘노벨상’급 국제상 수상 경력을 가진 인물을 총장으로 임명하는 등 특급 지원을 통해 세계 유수대학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교수는 “대학이란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현대 사회의 에너지전문가는 전기공학 뿐만아니라 기계공학, 물리, 화학 등을 두루 학습해야 하고, 나아가 이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공급, 소비해야 되는지 에너지철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선 인문·사회학부 설치를 통해 기본 교양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한전공대는 일단 규모가 작다”면서 "이대로라면 고급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아닌 기능연수원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노벨상 수상자를 총장으로 데려오겠다고 하는데 지난 100여 년 동안 에너지 문제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는 전무하다”며 “설사 그에 걸맞은 사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어느 누가 ‘나는 연구를 그만두고 대학을 만들겠다며 오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이나 인재양성에 대해 전혀 고민을 하지 않은 한전이 현실 인식도 못한 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대표가 일반 사기업 오너나 행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만약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사업을 그만두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친다고 하면 사회공헌이라 생각해서 박수칠 일이다. 또 이들 기업이 현재 진행하는 사업과 무관하게 관광·레저 사업을 하겠다고 해도 주주들 동의만 얻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갑 한전 사장이 무슨 자격으로 국민의 혈세를 이용해 돈 잔치를 벌이겠다는 것인지, 어째서 그 아이들에게만 그러한 엄청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국민을 기망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전 관계자가 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전 채용과 관련 “한전공대 졸업생들에게 채용 시 가산점을 부과하는 혜택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혜택을 주고 안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한전을 한전공대 출신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아니면 왜 인재 양성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특히 이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형편에 교육부에서도 미지근한 입장을 보이는 데도, 한전이 법에 정해진 활동영역을 벗어나면서까지 교육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고 했다.
한전은 ‘한국전력공사법’에 의거해 전원개발 촉진·합리적인 전기사업 운영을 통해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동법 제13조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전, 송전, 변전 등과 이와 관련된 연구·기술개발 사업 등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교수는 “한전의 대표가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 ‘을’이라는 것과 자리보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양식있는 공직자의 행태로는 볼수 없다”면서 “공기업을 경영하는 공직자는 국민을 고려하는 자세를 1%라도 보여줄 의무가 있는데 그 부분을 외면하고 '저질' 정치화가 돼버렸다”고 비난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정부다. 그 정부의 공기업 대표가 법을 무시하고 정권의 눈치만 보겠다고 한다면 김종갑 사장은 자격미달이다.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정부의 정책을 실행해야 되는 입장에 있는 공기업의 수장으로 잘못 된 것이 있다면 정부·여당의 절차가 잘못됐으니 우리가 난처하다. 법과 제도에 따라 정책을 수정해 달라는 의견을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설득 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공기업 수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이 교수는 “지난 대선 때 한전공대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아준 것은 맞지만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을 100% 지지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부가 이런 공약들을 다듬어 국회로 보낸 뒤 승인을 받아 필요한 법률과 제도를 만든 이후 시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절차가 완전히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현재 상황으로 볼 때 한전공대 설립과 관련한 공약은 아직 법과 제도의 틀 속에 들어오지 못한 공약집에 열거된 하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최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립유치원 비리’를 예로 들면서 “일부 유치원 원장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교육자가 아닌 사업자라고 말한다. 남의 집 자식을 데려다 교육하는 사람이 ‘나는 장사꾼이다’고 당당하게 소리친다”며 “공기업 수장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못하면서 교육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립유치원보다 더 엉망일 것이다”고 힐난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기업의 대표는 자기의 돈으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이러한 노력들이 뒷받침 돼야지만 국민들로부터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최소한의 포장이라도 해주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