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유통업계의 소위 ‘대목’이다. 11일 중국 광군제와 해마다 11월 넷째주 목요일날 열리는 블랙프라이데이 등 지구촌 할인 행사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23일이다.
광군제는 사람이 혼자 서있는 듯 한 모양인 1이 4개나 겹쳐 있다고 해서 '독신절'로도 불린다. 솔로들이 외롭게 자장면을 먹는 우리나라의 솔로데이처럼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외로움을 나누는 평범한 날이었지만 지난 2009년 중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알리바바가 대규모 할인 행사를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할인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알리바바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2017년 광군제 하루 동안 알리바바가 달성한 매출은 1628억위안, 한화로 28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것은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작년 한해 달성한 매출의 13%를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2위인 징동닷컴의 이날 매출도 1271억위안, 한화로 21조4000억원이다. 광군제 하루의 두 회사 매출이 49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광군제 기간 해마다 32~60%의 고성장을 기록한 알리바바의 올해 매출은 2142억위안, 한화 36조원으로 전망된다.
이어 시작되는 지구촌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도 마찬가지다. 매년 11월 넷째주 목요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제히 진행되는 이 행사를 통해 미국 소매업체들은 연매출의 20%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해 지난 2015년 출범한 행사가 지난달 열렸던 코리아세일페스타(이하 코세페)이다. 10일 가까이 진행된 코세페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정부의 독려와 후원 속에 대규모 홍보와 할인 행사에 나섰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코세페를 외면했다. 코세페의 초라한 성적표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4년 동안 계속 된 행사는 소비자들의 외면 속에 해마다 그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실제 코세페 기간 국내 제품들의 할인율은 10~30%에 그쳤다. 이 같은 할인율은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율과는 물론 평소 해외 직구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굳이 코세페 기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해외 직구를 통해 이 같은 가격에 같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코세페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낮도 할인율이었다.
그렇다면 광군제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80~90%의 소위 ‘미친 할인율’은 어떻게 가능할까. 해법은 유통 구조에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유통업체가 제조사로부터 상품을 직접 사서 판매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한꺼번에 대량의 물품을 구매하면 매입단가가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에 유통업체는 대량물품을 구매하게 되고 팔다가 남은 물품들은 이미 구매를 했기에 유통업체가 떠안게 된다. 창고비 등 재고관리 비용이 새롭게 발생하기에 유통사는 이맘때쯤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고떨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통업체가 대기업인 탓에 ‘특약매입’ 거래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특약매입은 유통업체가 반품을 전제조건으로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외상으로 받아 판매하는 거래 방식이다. 판매를 하다가 남은 재고 물품은 언제든 제조업체에 되돌려줄 수 있기에 굳이 많은 할인율을 적용하면서까지 떨이 판매를 할 이유가 없다. 직매입 문제가 코세페 활성화의 열쇠로 떠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제라도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이 코세페 활성화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불공정한 관행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내년도 코세페가 광군제나 블랙프라이데이를 넘어서는 글로벌 할인 이벤트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면 너무 큰 희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