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흥’과 ‘한’ 시흥월미농악의 가치
시흥의 ‘흥’과 ‘한’ 시흥월미농악의 가치
  • 송한빈 기자
  • 승인 2018.11.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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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전통예술 '대표격'
시흥월미농악 보존회, 2000년대 초부터 월미농악 전승위해 ‘구슬땀’

 

시흥월미농악보존회재공
사진= 시흥월미농악보존회 제공

경기 시흥월미농악이 지난 9월 열린 제12회 경기도 청소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과 지도상을 석권했다.

경기도내 26개 시군 중 가장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은 시흥월미농악은 남원 춘향제 “춤바람난장” 초청공연과 전국대회 출전권을 얻게 됐다.

이와 같이 시흥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중 가장 짜임새 있는 시흥월미농악은 편제와 예술성이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시흥월미농악은 군자성황제 새우개 장승놀이와 함께 시흥시에서 전승돼 오는 민속놀이 중 하나다. 그 시작은 시흥시지만, 조선시대에는 경기도를 넘어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시기마다 행해지는 목적과 명칭이 달랐다. 정월대보름이면 세초(歲初) 벽사진경 및 기풍(祈) 행사의 목적으로 하며, 5월에는 파종 때 단오, 6월 김맬 때는 농번기 이므로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7월에는 일손을 놓고 허리를 펴는 때이므로 호미씻이, 백중놀이라 했고, 8월에는 농민들의 경사스러운 명절(한가위), 10월에는 추수를 끝내고 공공을 축하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洞祭)’를 지낼 때에 놀던 풍물놀이였다.

그러나 그 목적이나 명칭이 어떻든지 시흥월미농악은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형성하고 마을을 하나로 만드는 민중의 대동놀이였다.

현재 형태인 시흥월미농악의 시작은 언제쯤일까? 시흥내 그리고 타 지역의 구전 증언으로 볼 때, 시흥월미농악은 19세기 이전부터 연행됐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실시된 고증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고종 2년(1865)에 경복궁 중건 때 부역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덜어주고자 전국 각처에서 농악대가 모였는데, 이때 시흥지역의 농악패들도 참석했다고 한다.

2016년 제7회 정기발표공연_시민놀터로 짜임새있는 편제와 예술성은 시흥지역에 전송되고 있는 농악 중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시흥월미농악은 쇠놀음이 발달돼 현란하고 경쾌하며, 법구잽이(소고) 상모놀림이 단정하며 빠른 것이 특징이다.

다른 어느 지역의 농악보다 재미있는 것은 화려한 무동놀음이다. 맞무동, 삼무동, 오무동 등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행하는 동작과 춤사위가 기예적이고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다. 두레파작, 호미씻이, 노동요 등 농경사회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점도 흥미롭다.

2007년 월미농악 보존회 조직, 고증 통해 시흥월미농악 재현으로 지금은 경기 전통예술의 대표격으로 활약하고 있는 시흥월미농악이지만, 그 전승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통을 냉대하던 시대적인 흐름과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두레풍물 특히 시흥의 시흥월미농악은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왔고 시흥의 전통예술의 소멸을 안타깝게 여긴 다수의 사람들이 조사와 오랜 기간의 고증을 통해서 지금의 시흥월미농악을 재현해내게 된 것이다.

이들이 바로 ‘월미농악 보존회’다. 월미농악 보존회는 90년 초반부터 미흡하게나마 전승되어지고 있던 월미의 농악을 1차적 고증을 통해 복원해 재현해왔다. 2000년대 초 우리지역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전환기를 맞은 이후, 2003년과 2016년 2회에 걸친 재조사를 실시해 시흥월미농악을 심도 있게 복원, 재현해 냈고, 지금의 시흥월미농악이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시흥월미농악 보존회는 올해까지 총 9회째 정기발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보존회는 매년 실시되는 정기공연을 통해 시흥월미농악의 진수를 선보일 뿐 아니라, ‘시흥월미농악 학술세미나’를 통해 전승자로서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며 전승자로서의 바른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통을 단순히 ‘옛 것’으로 치부하면 역사의 길은 금세 끊겨버리고 만다. 시흥월미농악을 단지 옛날 놀이로 흘려보내지 않은 시흥월미농악 보존회의 노력이 가치있는 전통 문화 예술을 되살려냈다. 이 가치를 발전시키고 전승하는 일은 이제 현재의 시흥사람들에 남았다고 한다

[신아일보] 시흥/송한빈 기자

hbso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