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14년 만에 뒤집힌 판단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14년 만에 뒤집힌 판단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8.11.01 13: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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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첫 무죄 판결…"처벌은 자유민주주의 원칙 반해"
대법원 계류 중인 유사 사건 227건도 모두 무죄 나올 듯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지난 2004년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은 14년 만에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환(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법원은 병역법 88조1항을 근거로 종교적·정치적 사유 등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은 처벌된다고 봤다.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는 법률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이행을 거부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며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반대했다.

이들 가운데는 "이 사건을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조계에선 그간 재판부마다 엇갈리던 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단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모두 227건이다. 전국 법원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는 사람은 무려 930여명에 달한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씨는 "국민의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성실히 (대체) 복무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