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판결 후폭풍…기로 놓인 한일관계
강제징용 판결 후폭풍…기로 놓인 한일관계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8.10.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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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한일관계 근간 흔드는 판단"…반발 거세져
정부입장 주목…핵심은 '한일청구권협정' 입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일관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정부의 '후속조치'에 이목이 모이고 있다.

대응방안 마련을 명분으로 '숙의과정'에 들어간 정부가 완충 작용을 하는 조치를 취할지, 아니면 판결 이행과 후속 줄소송의 가속 페달을 밟을 조치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당초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린 직후부터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을 표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30일 발표한 항의 담화에서 이번 판결과 관련해 "매우 유감"이라면서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15분간 이어진 만남에서 고노 외무상은 이 대사에 악수도 청하지 않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판결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의 반응도 거셌다.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31일 일본 신문들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1면 톱기사로 다루면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한국 대법원이 한일관계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판단을 했다"며 "한국 정부는 사태악화를 막는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를 염두해 두고 법원 판결을 존중하되, 제반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대응방안 마련에 돌입했다.

정부는 앞으로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법무부를 중심으로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만들 예정이다.

지난 2005년 한일협정 문서 공개 당시 후속 대책 논의를 위해 구성했던 민관공동위원회 형식 기구를 만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은 이날 이뤄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의 전화 통화에서 일본에 전해졌다.

통화에서 강 장관은 이번 판결의 취지를 설명하고, 민관 합동으로 범정부차원의 입장을 마련겠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숙의과정'을 거쳐 내놓을 수 있는 대응방안은 다양하다. 우선적인 것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만약 우리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할 경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져 일본과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

그간 우리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문 등을 토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에 입각한 대일 배상 요구를 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유지해오기도 했다.

반면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존의 입장을 수정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번 소송의 이행 및 추가 소송 절차가 가속화 되게 된다.

이 때 일본은 외교적 협상→중재위원회 논의→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외교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측의 협조적인 입장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임원은 과거 주주총회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수용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양국간 정치적인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일철주금이 2012년과 같은 입장을 갖고 판결을 수용하며 배상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당장 추가적인 개입에 나서는 것 보다는 시간을 갖고 국민의 목소리와 한일관계를 두루 고려해 적절한 중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여러 견해들이 있기 때문에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