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보면 울렁거려"…'5·18계엄군 성폭행' 국가 첫 확인
"군복 보면 울렁거려"…'5·18계엄군 성폭행' 국가 첫 확인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8.10.3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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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 계엄군 등에 의한 5·18 성폭력 17건 확인
피해자들 트라우마 여전…피해자 면담조사·상담 지속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이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조사관 등에 의한 여성 성폭행이 자행됐다는 것이 정부의 조사결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이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조사관 등에 의한 여성 성폭행이 자행됐다는 것이 정부의 조사결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 사건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17건의 성폭행 사건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활동을 종료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6월부터 10월말까지 △피해 접수·면담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5·18 관련 자료 분석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인권침해행위가 다수 발견됐다.

성폭행은 대부분 시민군이 조직화하기 전인 민주화운동 초기(5월 19~21일)에 발생했다. 피해자 나이는 10대에서 30대였고,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 종사 등 다양했다.

장소로 나눠보면 초기에는 광주시내에서, 중후반에는 광주 외곽지역에서 많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대다수는 조사에서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다수(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당했다고 진술했다.

또 연행·구금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성고문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에 노출되기도 했다.

속옷 차림의 여성을 대검으로 희롱하거나 성고문을 하는 내용이 있었고, 유방과 성기에 뾰족하고 날이 있는 물건으로 생긴 상처인 자창(刺創)이 발견된 관련 기록도 있었다.

아울러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 임산부 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등 여성인권침해행위도 다수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5·18 계엄 이후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악몽 같은 기억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증언했고, 다른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치유도 받지 못한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 중 하나는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고 말했다.

조사를 마무리하면서 공동조사단은 피해자가 과도한 입증 책임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한편 최초 면담조사시부터 심리전문가와 치유기관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원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외에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조사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하는 법 개정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내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별도 소위원회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동조사단은 가해자에 대해 조사 권한이 없고 시간적 제약이 있어 당시 발생한 성폭력 전체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에 공동조사단은 이번 조사 결과 자료 일체를 출범 예정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관할 예정이다.

위원회 출범 전까지는 광주광역시 통합신고센터를 이용해 계속 신고접수를 받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가부는 피해자 면담조사와 상담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은 "이번 조사는 5·18 관련 여성인권침해행위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진실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