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투명해야 하고 가장 안전해야 할 유치원이 또 도마위에 올랐다.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공개되자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국민들까지도 경악하고 있다. 이 쯤 되면 비리의 온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 정책토론회’가 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이날 사립유치원 원장 300여명이 토론회장을 찾아 “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매도하지 말라”며 항의, 토론회장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면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11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를 통해 비리 혐의가 적발된 유치원들의 명단과 그 비리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이 명단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후폭풍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지원금이 명품백, 자동차보험금, 자녀 학원비 및 등록금, 노래방, 숙박업소, 외제차, 성인용품 구입 등에 쓰인 것이다. 심지어 억 단위의 부정사용 유치원도 차고 넘쳤다.
비리유치원 중에서도 유독 이슈가 됐던 경기도 동탄의 환희유치원의 경우 유치원 설립자 겸 전 원장인 김 모 씨가 유치원 운영비로 명품가방, 성인용품을 구입한 것도 모자라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등 총 7억원을 멋대로 사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번 비리유치원 사건이 불거지면서 지난 14일 항의 방문한 학부모들을 피해 구급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김씨는 이미 지난해 7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파면요구를 받았지만 학부모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총괄부장으로 유치원 운영을 이어 왔다.
그런 그가 지난 17일 저녁 유치원에서 간담회를 갖고 학부모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로 잘못을 빌었다.
남은 세월 반성하겠다는 그는 학부모대책위가 제시한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 등의 유치원 정상화를 위한 세부 실천 사항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환희유치원 학부모들은 더 이상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비리유치원 사건은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매년 2조원이 넘는 돈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사립유치원에 지원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입된 세금이 원장과 가족을 위해 쓰인다면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공분이 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유치원 비리와 관련된 안건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립유치원 폐지부터 횡령죄 처벌, 누리과정 지원비 부모에게 지원 등 일주일새 300여건이 넘는 안건이 올라왔다.
더욱 화를 부추긴 것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행보다.
문제가 불거지자 한유총은 지난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공개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들이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의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법적대응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이번 문제 또한 조용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의 교육이 걸린 문제인 만큼 정부는 현명한 해결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감사결과 실명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강력한 대응책도 마련해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일벌백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