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통신사 길 행사’ 영천, 문화유산 가치 있나
[데스크칼럼] ‘통신사 길 행사’ 영천, 문화유산 가치 있나
  • 장병욱 기자
  • 승인 2018.10.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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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대구·경북총괄본부장
 

지난 7일 경북 영천시에서 조선통신사행렬 재현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됐다.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2015년부터 통신사의 길 따라 우정 걷기행사가 영천시 문화예술 축제로 매년 열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통신사 행렬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영천시의 대표문화행사로 승화시키겠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조선통신사란 세조때 일본을 사신사로 다녀온 신숙주가 성종의 명을 받아 ‘해동재기’를 저술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사절 대응절차 일본의 역사·풍속 지리 등이 수록돼 있다.

1590년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에 사절을 요청함에따라 조정에서는 침략할 의도가 있는지 염탐하는 목적으로 황윤길과 김성일 등을 탐적사로 파견한 바 있다.

임난과 정유재란후 1598년 도요도미히데요시가 죽자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조선에 사신을 보내오면서 히데요시를 멸망케해 원수를 갚아주었으니 화친하자는 뜻으로 통신사 교환을 요청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두 나라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기위해 회답겸 쇄환사(일본에 포로로 잡혀 간 동포를 쇄환하기 위해 파견했던 사신)를 파견했는데 1·2·3차까지는 포로를 쇄환해 돌아왔다. 1636년 4차부터는 일본무사들이 통신사 숙소를 찾아와 필담 창화가 시작됐으며 7차부터는 수십 종의 필담 창화집이 편집됐다고 한다.

2015년 9월 한일 두 나라 대학생들이 연세대학교정에서 조선통신사의 길따라 걷는 발대식행사 이후 ‘조선통신사 평화로가는길’ 이라는 테마로 역사 유적지 유물 등을 보고 배우며 우정을 돈독히 하자는 뜻에 따라 영천시는 두 나라의 친선도모와 통신사 행렬과 마상재 활동을 특화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키고자 역량을 집중해 왔다.

하지만 침략근성이 농후한 일본은 도꾸가와 이후 또 다시 조선을 구미열강들과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고 을사능약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우리민족은 36년간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일본은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통신사 길따라 우정의 걷기 행사도 우리민족의 생각과 일본의 생각은 다를수도 있다.

지난 6일 영천 임고서원 포은연수관에서는 ‘포은 숭모사업회와 조선통신사기념사업회’ 주최로 ‘포은과 영천조선통신사’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가졌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가장 빈번할 때인 1377년(우왕 3년)일본에 보빙사로 파견된 포은 정몽주는 구주탐제다마가와료를 만나 왜구에게 잡혀간 고려백성 수백명을 귀국시켰다.

다마가와료를 비롯한 일본의 석학들은 포은의 박학다식과 인품에 감복해 그를 칭송하고 사모했다고 한다.

통신사 등이 일본에 파견할 때는 반드시 포은의 일본사행 때 시(詩)와 신숙주의 ‘해동국기’를 읽고 일본에 대한 사전 학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은의 고향인 영천을 “통신사의 원조지역으로서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역사적 문화유산 지역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일부 토론자의 의견은 달랐다. 포은의 외교적 철학을 조선통신사의 사행에 접목하려는 것은 너무나 어색하다는 것이다.

“몇차례 조선통신사가 영천을 지나면서 머물렀다고해서 영천 문화자산으로 삼으려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과연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를 되새겨 봐야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조선 통신사의 길’은 굴욕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일 두 나라간 ‘조선통신사 우정의 길 걷기 행사’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bwjang28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