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라 한 적 없고 여름 가라 한 적 없어도 여지없이 우리에게 가을은 이렇게 찾아 왔다.
폭염으로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뜨거운 여름 무더위가 고개를 숙이고 만물이 완성되는 시간 가을이 되자 시원하고 쾌적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 시원한 바람은 우리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나오라고 손짓한다.
가을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참 좋다. 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녘에 두둥실 흘러가는 하얀 구름, 산들거리는 바람과 함께 길가에는 코스모스의 환한 미소,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여기에 더해 가을은 화려하다. 하늘빛도 나뭇빛도 곱디곱다. 날씨도 좋고 풍광도 좋으니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자연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새들도 노래하고 우리들 마음도 풍요로운 데 이 완연한 가을을 잠시나마 만끽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여유 없는 단편에 치우친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잠깐의 휴식이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 더욱 더 어디론가 떠나라고 유혹한다.
시내와 도로변 어느 곳에서나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보는 마음에 살랑살랑 가을바람을 일으킨다. 몸을 가득 채워주는 가을 내음에 자꾸만 일상에서 벗어나라고 부추긴다.
고단한 일상의 일주일을 보내고 TV를 보며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싶은 그런 어느날 주말, 그런데 현실은 그런 여유를 즐길 틈이 없다. “쉬는 날 누워서 TV만 보느냐”는 아내의 시선, 우리도 놀러가자는 아이들의 성화,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잠시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해야 한다. 여기에다 가족 나들이 한번 떠나 볼까 하면 주머니 사정은 녹록지 않고,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터, 고민이다. 이런 고민을 접고 먼 나들이를 계획하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동네 한바퀴를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아내와는 팔짱을 끼고, 아이들과는 손을 맞잡고 어스름하게 핀 단풍길을 걸어 보자, 아내와는 연예시절 나누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에게는 향기 그득한 자연을 선물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옛말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가을이 길지 않은 시간 속으로 속절없이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의 ‘권불십년’도 있다. 이 또한 화무십일홍과 같은 의미이다.
물론 세상은 바쁘고 할일이 많은데 속편하게 나들이 타령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과 몰입해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나를 놓아두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삶이 바쁘면 바쁠수록 내가 서있는 이곳의 작은 변화를 주는 것도 만물이 완성되는 계절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쉽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경기침체와 취업난, 경제적 여건 악화로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즐길 틈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여유를 아주 놓고 살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돈과 지위, 학문이 높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뜻밖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데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가을은 만물이 완성되는 계절이다. 지금 도시라는 인공적 공간 속에서 일상의 고된 일과를 모두 벗어 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족과 함께 작고 소소한 예쁜 추억을 만들어 보자. 아이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가까운 자연의 품속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