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식 밖으로 달린 '무정차 고속열차'
[기자수첩] 상식 밖으로 달린 '무정차 고속열차'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8.10.0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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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철도정책을 만들 때 사전 조사를 하고, 예상 가능한 위험도 미리 점검해보면 어떨까?

혹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가지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기자도 이런 제안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좀 당황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철도정책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뚱딴지같다.

지난해 서울과 부산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 방안'이 국가 철도정책의 길잡이와 같은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에 담겼다. 그리고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취소됐다.

이유는 안전성과 수익성, 선로용량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찾는 과정은 간단했다. 철도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공무원들과 철도공단 등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모여 나눈 몇 차례 대화에서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무정차 고속열차는 이미 코레일이 과거에 운영했다가 수익성 등을 문제로 폐지했던 것이기도 하다.

뻔히 보이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국토부는 이를 국가 중·장기 철도계획에 담고 그럴듯하게 홍보했다. 그러나 이것이 될 만한 사업인지 사전에 검토하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했다.

전문가들에게 전화 몇 통만 해봤어도 찾을 수 있었던 문제를 무시한 채 무리수를 뒀던 이유는 뭘까?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국토부는 지난해 2월 무정차 열차 도입을 담은 철도기본계획을 발표했고, 그 다음 달 8일 이에 기초한 선로배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틀 뒤인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선고를 받았고, 약 1개월 뒤인 4월10일부터 국토부가 주재한 3차례 회의를 통해 무정차 열차 계획이 취소됐다.

애초 쉽지 않은 사업을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밀어붙였다가 상황이 바뀌자 서둘러 접은 듯한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국토부가 무정차 열차 도입 중단을 결정했던 회의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와 어떤 절차로 철도기본계획을 수정한 것인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다.

철도당국자들이 정말 잘 해보려다 계획이 틀어진 것이라면, 이 같은 비판을 받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뚱딴지같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해야하는 기자는 더 억울하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