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 또 법정 시한 넘겨
예산안 처리, 또 법정 시한 넘겨
  • 전성남기자
  • 승인 2008.12.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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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계수소위, ‘예산안 처리시한 연장’ 놓고 진통
김형오 국회의장 “여야, 통 큰 결단 필요”

내년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인 2일까지도 정치권은 입씨름만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국민 요구를 외면한다며 ‘9일 처리’ 방침을 재차 확인했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단독 예산 심의는 모든 상임위 운영의 차질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국회의 예산안 처리는 6년 연속 법정 시한을 넘겼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앞장서 법을 어기는 셈이지만, 여야 누구도 양보할 기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는 2일 이틀째 회의를 열었지만 민주당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재수정을 요구하며 불참, 파행을 빚었다.

한나라당 간사인 이사철 의원은 이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불참하고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측 위원만 참석한 채 열린 회의에서 “오늘 민주당 간사인 우제창 의원과 협의한 결과, 민주당은 세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계수조정소위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한구 예결위원장은 “국회법상으로는 오늘까지가 처리시한이다.

이를 넘기는 것 자체도 큰 부담인데, 23일까지 마냥 기다리기 어렵다”며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은 똘똘 뭉쳐 머리를 맞대기 바쁜데 우리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위기”라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금 상황은 과거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정치권이 하던 행태와 똑같다”고 비판한 뒤, “우선 간사간 다시 협의를 거친 뒤, 본회의가 끝나고 (회의를) 속개하자”며 정회를 선포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도 “민주당의 말을 들으면 매일 입는 옷이 달라지듯 하는 말이 다른 것 같다.

며칠 전만해도 재수정 예산안을 제출하라고 하더니 오늘은 세법 개정을 하라고 한다”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예산안 처리시한을 23일까지로 연장해 달라는 것은 민주당의 공식적인 요구사항이 아니다”며 “민주당은 12월 30일 이전까지는 반드시 예산안을 처리할 것이며, 그 사이에 간사 협의를 통해 처리시한은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유선진당 간사인 류근찬 의원은 “예산안과 관련해서는 여야가 힘을 합쳐 심사를 해야지 일방적으로 강행처리를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선진당의 기본 입장”이라며 “야당의 큰 축인 민주당이 (계수조정소위에) 불참하면 우리도 참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다만, “끝까지 민주당의 움직임이 없으면 우리도 결심을 해야 할 것”이라며 강행처리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법적 기한인 2일 시한 내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진데 대해 해 유감을 표명하고 여야의 조속한 합의를 촉구했다.

김 의장은 이날 의장 집무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오늘은 헌법에서 규정한 예산안 의결 절차를 마쳐야 하는 날이지만 어제부터 시작한 계수조정소위조차 파행을 겪고 있어 법정시한 내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국회가 헌법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어 “국회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법정 시한을 어겨가며 만성적인 위헌 상태에 놓은 것은 국회 일정상이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예산안을 정략적으로 접근하는데 기인한다”며 “여야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것 때문에 예산안 처리를 늦춰야 한다고 보는 국민은 거의 없고 결코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초유의 세계적 경제위기에 비상한 대책이나 희망의 결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회의 모습은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문다(日暮途遠)’는 심정”이라며 “국민을 하늘처럼 섬긴다고 말만 하지 말고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통 큰 양보로 국민에게 ‘그래도 희망’을 만들어주기를 여야 지도부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는 “예산안이 늦게 처리되면 내년 1월 한 달 내내 정부에서 예산 집행 계획 실무 작업을 하느라 조기 집행이 되지 않는다”며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가 늦어지더라도 국민들이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만큼 예산안이 신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조속한 예산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내용상으로 여야가 큰 차이가 없고 다만 세입 부분의 감세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있는 것 같다”며 “세출 문제는 예결위에서 다루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감세 부분은 에결특위가 아니라 기획재정위원회가 중심인 만큼 별도로 협의해 나가면서 진행해야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예산안이 늦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국회법상 9월 정기국회를 시작하자마자 국정감사를 하게 돼 있는데 국감 대상 기간, 증인 채택 문제로 사실상 9월 하순이나 10월 이후로 늦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이번에 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서 이런 문제까지 다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