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인 체제로 운영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한 5명의 헌법재판관 임기가 19일 종료됐으나, 늦장 인선으로 인해 헌재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다.
20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예정돼 있으나 의원들 불참으로 이뤄지지 못하거나 부결되면 일시적이라고 해도 기능이 정지되는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국가의 최고 실정법 규범인 헌법과 관련된 분쟁을 다루는 특별 재판소로, 하루라도 공백이 생기면 안될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헌법재판관 5명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인데도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 등을 따지면서 후보자 추천부터 시간을 허비했다.청와대는 지난달 29일 유남석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했다. 국회 추첨 몫도 여야 간 이해가 충돌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말 김기영 후보자를 추천했고, 바른미래당은 지난 3일 이영진 후보자를, 자유한국당은 다른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10일에야 부랴부랴 이종석 후보자를 추천했다. 늦장 추천으로 헌재 공백 사태가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대법원장이 지명해 국회 표결 절차가 필요 없는 이석태·이은애 후보자의 인선도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일까지도 국회가 청문 보고서를 송부하지 않는다면 대법원장은 그대로 헌법재판관을 지명하고 이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대통령이 국회에 보고서 채택을 재차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남북정상회담 일정 등을 고려할때 자칫 추석연휴 이후나 돼야 헌법재판관 충원이 가능해 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판관 결원으로 최소 일주일 이상 헌재 운영이 마비돼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위상마저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재는 지난해 헌재소장과 재판관 공석 사태로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반복되는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를 막기 위해 헌재소장이나 재판관 후임이 인선되지 않을 경우 임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방안과 공석 대비해 예비재판관을 선임해 놓는 방법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가 가시화되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정치권이 제때 인선 업무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가 헌법재판소를 무력화 시켰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고도 국민의 대의기관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되묻고 있다.
헌재 기능 정지는 헌법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체제를 뒤흔드는 일이다.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