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혁신이 만든 LX 최초 '여성 지역본부장'
용기와 혁신이 만든 LX 최초 '여성 지역본부장'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8.09.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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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본부장에 '오애리 고객지원처장' 임명
남성 중심 조직서 본사·현장 누비며 능력 입증
양성평등·공정경쟁 등 조직 차원 노력도 한 몫
오애리 LX 제주지역본부장.(사진=LX)
오애리 LX 제주지역본부장.(사진=LX)

국토 현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고된 업무로 인해 대표적 남성 중심 공기업으로 꼽히던 LX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창사 이래 처음 여성 지역본부장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남자들로 가득했던 조직에 최초의 여성 기술자로 당차게 입사했던 오애리 LX 제주지역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본사와 현장을 가리지 않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차 없이 깨왔던 그는 양성평등과 공정경쟁을 향한 LX 혁신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한국국토정보공사(이하 LX)는 18일부로 본사 오애리 고객지원처장을 제주지역본부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오애리 본부장은 지난 1985년 현장 엔지니어인 국토정보직으로 LX에 입사해 2013년 여성 최초로 경기 김포지사장을 거친 경력 34년 차의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올해로 창사 41주년을 맞은 LX 최초의 여성 지역본부장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두껍기만 하던 유리천장을 깨버렸다. 여성 직원 수가 전체 직원의 14% 정도에 불과한 조직에서 일어난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다.

전국 곳곳을 누비는 지적(地籍)측량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LX는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오 본부장은 LX의 핵심업무를 두루 거치며 능력과 끈기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입사 후 11년간 본사 근무를 충실히 해낸 그는 1996년 경기지역본부 김포·부천·광명·고양지사 등에서 15년 간 측량기술자로 현장을 누볐다.

본사 홍보담당을 비롯해 △측량민원담당 △경기지역본부 김포지사 수석팀장 △김포지사장 △고객지원처장 등을 거치며 기술과 행정을 모두 경험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12월1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2회 소비자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고객지원처장이던 오 본부장(가운데)이 공정거래위원회 표창 수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X)
지난해 12월1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2회 소비자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고객지원처장이던 오 본부장(가운데)이 공정거래위원회 표창 수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X)

여성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오 본부장의 직장생활기는 지난 2013년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여성관리자 수기공모 우수사례집'에도 실렸다.

당시 수기를 보면 오 본부장은 과거 대한지적공사 간판을 달고 있던 LX에 최초의 대졸 여자 기술자로 입사했다. 시작부터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것이다.

최초라는 훈장을 달고 산다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힘든 고비가 찾아 올 때면 남 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용기와 인내로 수 많은 무용담을 남기며, 결국 지역본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초의 여성 지역본부장 탄생에는 조직 차원의 변화 노력도 크게 작용했다.

LX는 양성평등에 기초한 지역본부장 공모라는 공정경쟁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LX 인사 관행을 과감히 탈피했다고 설명했다.

최창학 LX 사장은 지난 7월 취임과 동시에 양성평등에 부응하는 합리적 인사방침과 공정경쟁을 인사혁신의 기치로 내걸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성과가 하루 아침의 혁신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LX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를 운영해 최근 5년 연속 20% 이상 여성을 채용했다. 또, 2014년부터는 10%의 양성평등 승진목표제를 지속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여성 관리자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다져왔다.

채용 후에는 여성 생애주기별 경력개발을 위해 신입사원·실무자·관리자 역량강화 교육과 워크숍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창학 사장은 "성 차별 없는 직장문화가 곧 조직 경쟁력의 기본"이라며 "앞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원칙을 확립하고 과감한 인사혁신을 기반으로 LX의 총체적 혁신을 이뤄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경남 통영시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제2회 LX 확대간부회의에서 최창학 사장(왼쪽)이 오 본부장에게 임용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X)
지난 17일 경남 통영시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제2회 LX 확대간부회의에서 최창학 사장(왼쪽)이 오 본부장에게 임용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X)

다음은 오애리 본부장과의 일문일답(一問一答)이다.

Q LX는 여성이 높이 올라가기 어려운 조직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조직 내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시나요?

최창학 사장님은 취임 이후부터 공정성과 신뢰성을 갖춘 인사시스템을 운영하겠노라고 공언하셨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되는 경우와 같이 불합리한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인사의 관행을 탈피하고 지역본부장 공모를 통해 발탁됐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남성중심의 현장업무로 지적 분야가 여성들이 쉽게 진출하기 힘든 영역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환경도 많이 좋아졌고 또 여성을 대하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실제로 LX가 2006년부터 20%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를 운영해 최근 5년 연속 20% 이상 여성을 채용해왔고, 2014년부터 10% 양성평등 승진목표제를 운영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1호 여성 지역본부장 탄생에 이어 2호도 준비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죠.

Q 현장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본사에서 근무하다 일선현장에 발령받았을 때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신입사원 때 현장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뒤늦게 현장에 나갔으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노력한 결과 측량팀장 승진도 하고 현장에서 최고 명예로운 업무실적우수상, 신기술이 도입되며 토탈측량경진대회 최우수상도 수상했습니다. 요즘 핫한 '술 잘 사주는 예쁜 누나'도 하고 직원들과 현장을 다니면서 소통하며 즐겁게 다녔어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현장. 고객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팀장 역할을 해야 하니까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오랜 시간 현장에서 근무하며 스스로 현장 체질로 바꾸려고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Q 특별히 힘든 점이 있었다면?

경기지역본부가 본래 직원도 많고 업무량도 민원도 많은 곳이에요. 수석팀장은 민원이 발생하면 출장하여 해결을 하는데 한번은 큰 민원이 발생했습니다. 해결방법이 없다고 고민하던 중에 그동안 쌓아온 업무경력을 발휘해 양쪽이 만족할 수 있도록 무난하게 해결한 적이 있었어요. 그 덕분에 발탁돼 본사에서 민원담당을 하게 됐습니다. 억지 민원도 많았어요. 오랜 기간 담당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민원인이 계셨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본사를 찾아왔습니다. 측량 결과는 문제가 없는데, 40m 이상 잘못됐다는 거예요.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어찌나 놓으시던지. 오실 때마다 들어드리고 관심을 가져주었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오실 때마다 전담 마크했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민원을 알아서 취소하시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민원은 충분히 잘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Q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지금은 한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같습니다. 우리 LX만 해도 569명(13.7%)이 여직원이고, 여성 관리자가 65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어요. 게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있고요. 더 많은 여성 직원들이 도전해서 업무의 벽, 사회의 벽을 넘어섰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선배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마라. 성실하게 임하고 있으면 누군가 그 노력을 지켜 봐주고 이끌어 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후배들이 꿈을 꾸고 노력하고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저도 더 노력해야죠.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