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상피제에 대한 단상(斷想)
[신아세평] 상피제에 대한 단상(斷想)
  • 신아일보
  • 승인 2018.09.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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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법무법인 현산 변호사
 

조선 19대 숙종임금 때인 1687년 1월 19일 농암 김창협(1651-1708)은 대사간(大司諫-임금에게 간언하는 일을 맡아보면서, 다른 사람의 상소를 임금에게 올리는 일도 맡아보는 지위)의 직위를 제수받았으나, 곧 사직의 상소를 올렸다. 그 이유는 대사간이란 자리는 의정부 일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자리인데, 그의 아버지인 김수항이 영의정 자리에 있어 의정부를 견제할 수 없고, 어떤 간언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공정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숙종은 그 뜻을 받아들여 김창협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전보 발령했다.
위 이야기는 조선시대 관료사회를 건전하게 유지시켜준 상피제의 한 사례다. 상피제란 일정한 범위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서 혹은 직속 관서의 관원이 되지 못하게 하는 제도로서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고려 시대에 처음으로 도입됐고,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정착됐는데 도입취지는 관료제를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모고교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녀 전교 1등’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부정의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교육부가 2019년 3월부터 교사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하는 상피제를 도입하기로 해 상피제 도입이 교육계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상피제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현재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사가 560개 고교에서 1005명, 그 자녀는 1050명이나 되는데 이들에 대한 배려없이 일률적·강제적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직업의 자유 및 학교 선택권 침해며, 무엇보다 학교가 부족한 지방에 대한 이해가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일 뿐 아니라,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아 불신사회를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와 행정부 등 각 분야에 상피제의 현대적 모습인 제척·기피·회피제도가 법제화된 제도로 정착돼 있는 현실에서 교육계의 상피제 도입 반대 주장은 일리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면서도 감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재판 또는 행정부의 심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일이나 특수관계인이 걸린 일에는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아 중립성을 담보할 제도로 제척·기피·회피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즉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단 또는 결정하는 자가 실제로 객관적으로 판단 또는 결정을 했다는 것 이외에 이해관계인 및 일반인에게도 그 판단 및 결정에 대한 객관성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되는데 제척·기피·회피제도가 신뢰를 담보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교육은 개인을 성장·발전시킬 뿐 아니라 사회의 부와 권력의 합법적 분배 역할을 담보하기 때문에 공정성은 다른 영역에서 보다 교육분야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대학입시 등 교육계의 비리 문제가 나올 때 마다 분노하는 이유는 교육의 기회 균등과 조건의 균등, 즉 공정성이 파괴된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좌절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군사부일체’라고 해서 선생님을 존귀한 존재로, 그리고 선생님이 공정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모고교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녀 전교 1등’ 사건 불구하고 교육계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지위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자의 위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판사를 믿지 못해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법제화 시킨 것이 아니듯이 선생님을 믿지 못해 고교 상피제 도입을 논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오히려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지위를 공고하게 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미래의 주역들에게 공정한 사회를 꿈꾸게 만들 교육을 담당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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