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군경에 사살… 68년만에 배상
한국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군경에 사살… 68년만에 배상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8.09.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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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가, 정당한 적법 절차 거치치 않아…유족에 손해 배상"

한국전쟁 때 학교 종을 쳤다가 빨치산 도주를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군경에게 억울하게 사살당한 민간인 피해자의 유족들이 68년 만에 국가 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설민수 부장판사)는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관련 기록을 보면 A씨가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임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A씨를 살해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가 유족에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유족들이 사건으로 겪었을 정신적 고통, 상당 기간 계속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의 내용과 중대함 등을 이유로 들어 A씨에 대한 위자료로 8000만원, 유족에 대한 위자료로 각 800만원을 산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은 2008년 진상 규명 이후 3년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으나, 유족 측은 2016년 말에야 A씨가 희생자로 등재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정이 나온 무렵 유족들에게 관련 사실을 통지했다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자 35명 중 한 명으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7월 전남 보성의 한 국민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던 A씨는 학교 소사(小使)를 부르려고 종을 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경찰은 A씨가 종을 친 이유가 빨치산에게 도망가도록 신호를 보낸 것으로 의심하고 그를 추궁했다.

A씨는 이후 석방됐지만 보성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다가 국군에 수복된 1950년 12월 다시 연행됐고, 결국 군경에 의해 사살됐다.

go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