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부산 무정차 고속열차 무산…졸속정책의 끝
[단독] 서울~부산 무정차 고속열차 무산…졸속정책의 끝
  • 김재환 기자
  • 승인 2018.09.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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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안전·선로·수익성 검토 없이 배짱계획
관계기관 회의서 "도저히 안 된다" 조용히 중단
이미 폐기된 사업 되살리면서 사전조사는 대충
KTX-산천이 승강장에 정차한 모습.(사진=코레일)
KTX-산천이 승강장에 정차한 모습.(사진=코레일)

서울~부산 이동 시간을 2시간 이내로 줄인다던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 계획'이 소리소문없이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안전 및 선로용량, 수익성 등과 관련한 난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특히, 국토부는 이미 한 차례 폐지됐던 사업의 재추진을 결정하면서도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무정차 KTX·SRT '감감무소식'

10일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확정 발표된 '고속철도 선로 배분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던 '서울~부산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이 무산됐다. 

서울과 부산을 2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계획은 지난해 2월 국토부가 발표한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에도 포함된 사업이다.

애초 고속열차 선로 배분 기본계획에는 지난해 8월부터 '수서~부산'과 '용산·수서~광주송정' 구간에 직통 KTX·SRT를 운행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예정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본지가 국토부 및 철도공공기관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장거리 직통 고속열차 계획은 안전과 선로용량, 수익성 등 열차 운행에 수반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중도에 막을 내렸다.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을 위해 산·학·연 관계기관 전문가 및 실무자들이 지난해 4월 회의에 착수했지만, 사고 가능성과 낮은 수익성, 부족한 선로용량 등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실무회의 시작 2개월 만에 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문제나 부족한 선로용량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서비스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었다. 일부 승강장의 경우 열차가 고속으로 통과하면 선로에서 튄 자갈이나 열차풍에 의해 승객이 다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승강장에 별도의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승강장 통과 시 열차의 속도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이동시간 단축'이라는 무정차의 기대효과가 크게 줄어들고, 이용객 유인 효과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일 KTX 열차가 동대구역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승강장에는 바닥의 노란색 안전선 외에 특별한 안전시설이 보이지 않는다.(사진=천동환 기자)
지난 5일 KTX 열차가 동대구역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승강장에는 바닥의 노란색 안전선 외에 특별한 안전시설이 보이지 않는다.(사진=천동환 기자)

◇ 예고된 실패…철도정책 신뢰↓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 계획이 중도에 무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토부는 타당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사업 중단의 가장 큰 이유가 '안전'이라는 점에서, 최우선으로 검토했어야 할 부분마저 뒤로 미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국토부는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을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인프라 연구용역조차 진행하지 않았고, 관련 부서 간 사전협의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공단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 철도운영과에서 추진하려고 했으나 (철도)건설과와 안전과에서 선로용량이나 승강장 승객의 안전문제를 지적한 거로 안다"며 "이후 관계기관 회의를 거치면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토부는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을 추진하면서 안전문제뿐만 아니라 수익성 검토에도 소홀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2010년12월부터 서울~부산 무정차 KTX를 1일 1회 왕복 운영해 오다 2015년4월 수익성 부족 등을 이유로 폐지한 바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를 되살리는 결정을 내리면서 수요분석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 발표 직후 신아일보가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계획을 취재할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수요 분석이 안 된 상황이라 무정차 고속열차를 얼마나 어떻게 편성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SRT 개통시점 부터 6개월 정도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자료를 분석해 방법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철도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속열차 무정차는 효율성이 떨어져 없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생각으로 다시 도입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 관련 지난해 4월3일 KBS 뉴스 보도 중 일부.(자료=KBS방송화면 캡쳐)
무정차 고속열차 도입 관련 지난해 4월3일 KBS 뉴스 보도 중 일부.(자료=KBS방송화면 캡쳐)

[신아일보] 김재환 기자

jej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