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개처럼 사라진 해무] ③ 열리다 만 서울-부산 1시간30분 시대
[단독][안개처럼 사라진 해무] ③ 열리다 만 서울-부산 1시간30분 시대
  • 천동환 기자·김재환 기자
  • 승인 2018.09.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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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기능 공유·수출 효과에 눈 감은 국토부
전문가·업계, 정부 태도에 "아쉽다" 한숨만
멈춰버린 상용화에 세계시장 공략은 '빈말'
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 2016년 공개한 '차세대 레일방식 초고속열차 시스템' 홍보영상을 통해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원천기술의 국산화를 통해 부산에서 평양까지 3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HEMU-430X 열차의 개발로 남북한 전체를 일일생활권으로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자료=철도기술연구원 홍보영상 캡처)
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 2016년 공개한 '차세대 레일방식 초고속열차 시스템' 홍보영상을 통해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원천기술의 국산화를 통해 부산에서 평양까지 3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HEMU-430X 열차의 개발로 남북한 전체를 일일생활권으로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자료=철도기술연구원 홍보영상 캡처)

서울과 부산을 1시간30분대에 연결할 수 있는 고속철도기술이 국토부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돼 10여년간 이어진 시속 400㎞급 고속철도 개발사업의 열매는 국민이 맛을 보기도 전에 썩어버릴 위기에 놓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세계 4번째로 빠른 고속철도 시대를 열게 됐다며 호들갑 떨던 당국자들. 그러나 그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최고 시속 430㎞ 고속열차를 손에서 놔버렸다. 새 정부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 과거 정권의 결실은 걸리적거리는 존재에 불과했다. 철도 당국자들에게 주인은 언제나 존재하는 국민이 아니라 때마다 바뀌는 정권이었다.<편집자주>

대한민국에 우리 손으로 만든 최고 시속 430㎞ 고속열차가 달린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전국 도시 간 이동시간의 단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속 400㎞로 열차 운행 시 서울과 부산 간 이동시간은 현재 2시간25분에서 1시간36분으로 줄어든다. 서울에서 대구까지는 1시간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전국 주요 도시 간 이동시간 단축은 국민 개인의 생활은 물론 국토발전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 정부 기관 스스로 입증한 기대효과

400㎞/h급 고속열차에 대한 기대효과는 여러 기관의 연구를 통해 이미 수년 전부터 입증됐다.

김종학 국토연구원 인프라정책연구센터장은 최근 '초고속열차와 콤팩트 국토 시대의 도래' 보고서를 통해 기존 시설 활용과 속도변화 대비 교류가능 인구변화 등을 고려할 때 시속 400㎞ 고속열차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결론냈다.

현재 운영 중인 KTX보다 빠른 차세대 고속열차가 성장 둔화기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도시 기능공유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학 센터장은 시속 400㎞ 열차를 도입할 경우 이동시간 2시간 내 교류가능 인구가 서울은 현재 3344만명에서 4172만명으로 약 25% 늘어나고, 부산은 1497만명에서 4223만명으로 2.8배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교류가능권역을 2시간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현재 KTX를 이용할 때와 400㎞/h급 해무를 이용했을 때 서울과 부산의 교류가능 인구 변화(단위:명).(자료=국토연구원)
교류가능권역을 2시간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현재 KTX를 이용할 때와 400㎞/h급 해무를 이용했을 때 서울과 부산의 교류가능 인구 변화(단위:명).(자료=국토연구원)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2011년 '경부 및 호남고속철도 속도 향상방안 연구 최종보고서'를 내놨다. 해무(HEMU-430X) 시제 차량을 기반으로 400㎞/h급 고속열차가 경부·호남고속선을 달릴 경우 통행시간 및 교통사고, 대기오염 등의 절감 비용을 고려해 2036년까지 최대 6조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2015년 '430km급 고속열차실용화 기술개발 보고서'에서 아시아-태평양 및 북미 등 연간 250조원에 달하는 세계 철도 시장 선점효과와 수천억원에 달하는 생산·부가가치 유발 및 수입 대체 효과 등이 발생한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 상용화 없이 수출도 어려워

국토부는 지난 2012년 해무 열차를 최초 공개하면서 전국 주요 도시를 1시간30분대로 묶고, 철도기술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국토부의 이 같은 공언은 말 그대로 '빈말'이 돼버렸다.

400㎞/h급 고속열차의 국내 상용화 시도 자체가 멈춰버린 상황에서 해외경쟁력을 갖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이 철도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990년대 프랑스 KTX 기술 이전사업과 해무 연구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한 철도전문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십년에 걸쳐 연구개발한 중장기적인 사업이 고지를 앞둔 시점에서 위정자들의 의지가 부족해 멈춰 선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라며 "이제야 세계적인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이 됐는데, 실용화 실적도 없는 시속 400㎞급 열차로 어떻게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 선진국과 경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HEMU-430X가 상용화될 경우 발생 가능한 수익 창출 및 해외시장 진출에 기대를 걸고 개발에 참여했던 민간기업들은 더 속이 탄다.

국내 최대 열차 생산 업체인 현대로템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차세대 고속열차 인프라를 구축해준다면 국내든 국제든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라 기다리고 있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며 "상용화 실적이 없으면 국제 수주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인프라가 갖춰지길 바라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대로템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430㎞/h급 차세대 동력분산식 고속열차(HEMU-430X) 개발에 성공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업수행실적 리스트 중 HEMU-430X 부분을 아직 채워 넣지 못했다.(자료=현대로템 홈페이지)
현대로템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430㎞/h급 차세대 동력분산식 고속열차(HEMU-430X) 개발에 성공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업수행실적 리스트 중 HEMU-430X 부분을 아직 채워 넣지 못했다.(자료=현대로템 홈페이지)

대한민국에 400㎞/h급 고속열차 시대를 열기 위한 기술적 준비는 갖춰졌다. 수많은 전문가가 10여년에 걸쳐 쏟아부은 땀의 결실이 국민을 위해 사용될지, 방치된 채로 녹슬어 버릴지는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국내의 한 철도연구기관 전문가는 "고속선 증속을 위한 기술적 문제는 모두 해결돼 국토부가 발주만 하면 추진할 수 있는 정도"라며 "인프라 문제도 기술적으로 다 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국회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면서 '해무'가 다음달로 예정된 국정감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지난 4일 신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지난 18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차세대 고속열차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많은 기대를 했는데, 지금까지 로드맵 조차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은 크게 실망스럽다"며 "국토부는 차세대 고속열차 운행에 필요한 추가 기술 확보와 선로개량 추진 계획이 담긴 구체적인 로드맵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끝>

☞ [단독][안개처럼 사라진 해무] 1편 보기 

☞ [단독][안개처럼 사라진 해무] 2편 보기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