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웅에서 美거물급 정치인까지… 존 매케인 별세
전쟁영웅에서 美거물급 정치인까지… 존 매케인 별세
  • 김다인 기자
  • 승인 2018.08.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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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존 매케인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플로리다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2008년 1월 존 매케인 당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플로리다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강한 소신을 가졌던 미국의 거물급 정치인이자 베트남전 영웅,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2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2세.

매케인은 이날 4시28분 애리조나 주 히든밸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부인 신디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신디는 트위터에 "그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곳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둘러싸여 그 자신의 방식대로 그가 살았던 길을 지나갔다"고 적었다.

매케인 의원은 1936년 8월 29일 파나마운하의 미 해군항공기지에서 해군 장교 존 매케인 주니어와 로버타 매케인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다.

매케인 의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본인 모두 해군 출신으로 그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58년 졸업했다.

이후 베트남전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5년간 포로생활을 하며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전 수세에 몰린 북베트남은 당시 매케인 의원의 아버지는 통합전투사령부 태평양사령관이었던 점을 활용해 협상을 하려했으나 이들 부자는 원칙을 내세우며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이런 일화들이 쌓이면서 그는 이미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이후 1973년 석방돼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981년 대령으로 퇴역했다.

그는 1982년에는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1987년 상원에 입성, 내리 6선을 지냈다.

매케인 의원은 원칙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성향이면서도 소식과 맞지 않는 당론은 무작정 따르지는 않아 이단아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진으로 자리잡은 그는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99년 9월 후보 경선 도전을 선언했으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게 패배해 상원으로 돌아간다.

2008년 대선 때는 공화당 후보로 지명돼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었다.

매케인은 당시 전국 정치무대에서 무명과 다름없었던 40대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한 때 돌풍을 불어오기도 했다.

다수당 대선 후보 중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정한 것은 1984년 월터 먼데일 당시 민주당 후보 이후 그가 처음이었다.

본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그는 상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비판자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지난해 7월에는 악성 뇌종양이 발병한 가운데서도 왼쪽 눈썹 위에 혈전 제거 수술의 흔적이 역력한 채로 의회에 복귀해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 여부 논의를 일단 계속하자는 안(案)의 가결을 끌어내는 투혼을 발휘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매케인 의원은 2017년 7월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당 소속임에도 불구 그의 정책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 백악관과 갈등을 빚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직후 트위터에 "매케인 의원의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며 위로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나와 매케인 의원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좀 더 숭고한 것, 즉 수세대에 걸친 미국인과 이민자들이 똑같이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했던 이상(理想)에 대한 신의는 공유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신아일보] 김다인 기자

di516@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