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외교부 간 '재판거래' 로드맵 오갔다
양승태 사법부-외교부 간 '재판거래' 로드맵 오갔다
  • 이서준 기자
  • 승인 2018.08.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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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차장 "외교부로부터 시그널 받아 재판절차 진행"
재판부 자체 판단했다는 대법원 해명도 거짓 드러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연합뉴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해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전원합의체 심리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세부 절차를 협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23일 사정당국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지난 2016년 9월2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민걸 기획조정실장이 심의관 한 명과 함께 외교부 청사에서 당국자들과 징용소송 재상고심 절차를 논의한 기록을 확보했다.

이 자리에서 임 전 차장은 피고인 전범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외교부 의견서를 제출받고 이를 빌미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기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12년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승소를 판결한 대법 판결을 뒤집는 로드맵을 완성하려 한 것이다.

특히 그는 "외교부로부터 의견제출 절차 개시 시그널을 받으면 대법원은 피고(전범기업) 측 변호인으로부터 정부 의견 요청서를 접수받아 이를 외교부에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해 사실상 법원행정처와 외교부 간 긴밀한 교감이 있었음을 보여줬다.

대법원은 그동안 강제징용 소송의 절차가 담당 재판부의 자체 검토와 판단에 따라 진행돼 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정황이 법원행정처와 외교부가 재판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소송절차의 세밀한 부분까지 계획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증명됐다.

임 전 차장은 당시 회의에서 "4년 전 내려진 판결을 바로 뒤집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현임 대법원장 임기 중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하며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말해 이들의 최종 목표가 기존 판결을 뒤집는 것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회의가 청와대·외교부·법원행정처가 2013년부터 논의한 '재판거래'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구체적 실행계획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재판은 임 전 차장 등이 구상한 로드맵 대로 흘러갔다. 이 사건의 피고인 전범기업 측 대리인은 회의 1주일 뒤인 10월6일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냈고 대법원으로부터 이 서류를 받은 외교부는 같은 해 11월29일 재판부에 재판 결과가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외교부 의견서 제출 이후 단계인 '전원합의체 회부'와 '판결 번복'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상태다. 대법원 측은 "소부(小部)에서 심리를 하다가, 2016년 11월부터 전원합의체 판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고안건으로 대법원장 및 다른 대법관들의 의견을 듣는 등의 방법으로 전원합의체에서 논의를 했다"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어 결국 전원합의체 판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전원합의사건으로 지정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세지를 기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에 이날 전원합의체 회의에서 징용소송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 법원행정처와 외교부 간 재판거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회부 역시 재판거래의 일부가 아니냐는 의혹은 더욱 짙어지게 됐다.

ls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