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인적 책임론보다 합리적인 해결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신아세평]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인적 책임론보다 합리적인 해결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신아일보
승인 2018.08.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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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얼마 전 한 대학의 교수와 나눈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현재 대학의 제도나 평가시스템이 잘하고 있는 다수를 독려하는 방식보다는 하위 5~10%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 존재할 수 있는 하위 5~10%를 소위 ‘잡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열심히 하려는 자신의 의욕이 사라지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정부부처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 부처는 매년 성과관리시행계획에 따라 부서들에서 수행하고 있는 관리과제(주요 정책과제)들에 대해 자체평가를 실시한다. 정책 수립의 적절성, 달성도, 효과성, 개선노력 등과 같은 평가항목을 통해 관리과제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평가대상 관리과제들 중 일부는 ‘반드시’ 미흡이나 부진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치를 달성했더라도, 좋은 성과를 냈다하더라도 다른 관리과제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면 하위 그룹에 속하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경쟁을 통한 정책목표의 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시스템이라 볼 수도 있지만, 미흡이나 부진으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는 성과치 또는 절대 기준치가 없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적 책임 중심의 해결방식이 사실상 ‘관행화’ 돼왔다. 선거가 실시된 후 패배한 정당들에서는 당대표와 핵심 당직자들만이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되풀이돼 왔다. 최근 실시된 6·13지방선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은 여론의 비판을 받는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 최고 책임자만이 ‘살짝’ 물러나는 일들을 되풀이 해왔다. 불가항력적인 재난·재해·사고로 인해 커다란 피해가 발생하면, 장관·최고경영자·부대장과 같이 책임피라미드의 맨꼭대기에 있는 사람만이 물러나고 봉합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사전 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만이 최선의 방식이 될 수는 없다. 여론의 질타나 비판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대응이기 때문이다. 또한 책임을 지는 태도보다는 ‘재수 없어서’, ‘때나 시대를 잘못 만나서’와 같이 그릇된 인식만이 사회적으로 팽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적 책임방식보다는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선행돼야 하며, 이를 통해 조직과 사회의 책임문화가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거센 여론과 언론의 비판에 직면해 즉시적으로 내려지는 인적 청산방식의 단기 수습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문제 사안에 대해 충분한 시간·전문인력·예산을 투입해 다각도의 조사와 연구들이 수행되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발생 원인과 배경의 진단, 장단기적 대응방안과 해결방안, 이를 위한 향후 인력·예산·자원의 배분, 정책 또는 사업의 우선순위 재조정 등을 담아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에 따른 매뉴얼 마련, 모니터링 또는 감시시스템의 도입, 교육과 훈련도 실행해야 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오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내일(‘미래’)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구를 남긴바 있다. 오늘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특정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원인분석-대책제시-정책순위 재조정/인력·예산·자원 재배분”과 같은 시스템적인 성찰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만이 조직과 사회내 구성원들이 책임지는 태도를 수용할 수 있고, 서로 신뢰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숙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