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 행위로 목숨 끊은 신병… 法 "보훈 보상자 인정"
가혹 행위로 목숨 끊은 신병… 法 "보훈 보상자 인정"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8.08.1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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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가혹 행위로 부대 전입 5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병이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신병이 목숨을 끊은 지 22년 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유진현 부장판사)는 군 복무 중 사망한 A씨의 부모가 서울지방보훈청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요건 비해당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1996년 2월 공군 교육사령부에 입대해 훈련을 마친 뒤 한 비행단의 헌병대대에 배치됐다. 그러나 부대 전입 후 닷새 만에 A씨는 경계근무를 서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직후 조사가 이뤄졌으나 당시 부대 선임병이나 동료들로부터 A씨에게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지 않았고, 타살의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아 단순 자살로 처리됐다.

그러나 A씨의 부모는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아들의 사망 원인이라고 판단 군 당국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지난 2014년 이뤄진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조사에 다시 응하게 된 A씨의 동료들은 당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털어놨다.

동료들에 따르면 당시 선임병들은 전입한 신병에게 근무 수칙 외에도 150∼200명의 지휘관·참모 차량 번호와 관등성명, 소대 병사들의 기수 등을 3일 내에 외우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신병들은 심야 시간에도 화장실 등에 숨어 암기사항을 외워야 했고, A씨도 사망 당일에도 점심도 거른 채 암기사항을 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선임병들은 취침 시간에 후임병들을 불러내 '머리 박기'를 시키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사건 발생 당시 A씨가 성격 탓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진술한 B 상병은 후배들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선임병으로 드러났다. B 상병은 A씨의 사망 전 사흘간 계속 같은 근무조였다.

A씨는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주어져야 할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곧바로 주간 근무에 돌입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회는 A씨의 사망이 '순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A씨의 부모는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 대상자 등록 신청을 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보훈청은 "인정할만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비해당을 결정했다.

A씨의 부모는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는 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 등 정서적 불안 요소가 가중되면서 자유로운 의사가 제한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씨의 자살은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신아일보] 박고은 기자

go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