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노동자가 바라는 정부의 소낙비
[기자수첩] 건설노동자가 바라는 정부의 소낙비
  • 김재환 기자
  • 승인 2018.08.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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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낮 최고 기온 34.1℃를 기록했던 지난달 25일. 그늘 하나 없는 정부서울청사 앞에 건설노동자들이 모였다.

'역대급' 타이틀을 갈아치우고 있는 폭염 아래 탁상공론에 불과한 정부의 '폭염기 안전지침'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이날 노동자들의 외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일하면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동료는 며칠 전 쉼 없이 일하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결국 세상을 떠났다.

숨이 막힐 정도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 기자회견장에서 비 오듯 땀을 쏟아내면서 머릿속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건설 담당 기자로서 진즉에 알렸어야 할 가혹한 노동현실을 이제야 마주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에야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날 사업자가 시간당 10~15분씩 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하는 내용의 폭염기 안전지침을 마련했다. 이마저도 강제성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실제, 고용부 지침은 건설현장에서 휴짓조각에 불과하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달 전국 건설현장 노동자 2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단 8.4%만이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고 답했다. "그늘지거나 햇볕이 완전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노동현실이 이처럼 처참한데도 고용부는 건설현장 단속과정에서 노동자가 9분을 쉬었는지 10분을 쉬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위법사항을 적발하기 어렵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놨다.

다른 정부부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에게 폭염을 해석여지 없이 공기연장사유로 인정해야하지 않느냐고 묻자 "검토는 하고 있지만 올해 유독 폭염이 심한 건데 이를 개정하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도 법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공기연장사유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던 국토교통부는 지난 1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긴급 지시에 따라 전국 지자체 및 LH(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시설공단 등 산하 기관에 폭염기 공사를 중지하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공염불에 불과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공사를 중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바로 다음 날 전국 낮 최고기온이 33℃를 훌쩍 넘었음에도 전국 각지 공공공사 현장에서는 평소처럼 공사가 진행됐다. 국토부는 공사중지 공문발송 이후 이행여부를 실제로 점검하지 않은 상태였다. 

뙤약볕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에게 소나기보다 절실한 건 임시방편에 불과한 조치가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다. 폭염기 안전지침을 의무화하고, 폭염을 공기연장사유로 명문화하는 등 적극적인 정부의 대처가 필요한 때다.

jej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