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023일 한결같은 투쟁의 끝…반올림의 울림
[기자수첩] 1023일 한결같은 투쟁의 끝…반올림의 울림
  • 김성화 기자
  • 승인 2018.07.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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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찾은 강남역 8번 출구는 분명 크지 않은 공간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비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023일의 농성을 끝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자리는 그 시간만큼이나 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 10년을 버티는 것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2016년 겨울 처음 반올림과 만난 농성 천막은 냉기가 돌아 두꺼운 겉옷을 껴입고 있어도 인터뷰가 쉽지 않았다. 요즘 같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무렵이면 그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나기란 더욱 힘들 것이다. 

첫 만남 이후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이 있는 곳에서 반올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16년 겨울 이후 지금까지 반올림 활동을 지켜봐 왔고 활동기간의 1/10 남짓한 짧은 기간이지만 관심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대부분 나와 같겠지만 그래도 반올림은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반올림이 마주한 상대는 대한민국에서도 비교 대상이 없는 삼성이란 대기업이다. 그런 삼성을 상대하는 반올림을 통해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바뀌어가기 시작했고 유사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무엇을 먹고 사느냐를 넘어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2007년 속초에서 택시운전업을 하던 한 아버지가 반올림을 찾으며 시작된 긴 싸움은 1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몇몇 피해자들이 산재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윽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강남역 8번 출구가 어제를 기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10월로 예정된 중재안이 나오면 반올림이 잊혀지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반올림과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우리사회 곳곳에 있다. 이제는 강남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그냥 잊혀지기엔 반올림이 우리 사회에 던진 울림이 크다.

[신아일보] 김성화 기자

shkim@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