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공사기간 못 늘려…쉼 없는 건설현장
폭염에도 공사기간 못 늘려…쉼 없는 건설현장
  • 김재환 기자
  • 승인 2018.07.25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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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공사 계약 조건상 공기연장 사유 不인정
건설사, 발주처에 인건비 증가분 요청 어려워
지난 24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이날 건설노조 관계자들이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모습이다.(사진=김재환 기자)
지난 24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이날 건설노조 관계자들이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모습이다.(사진=김재환 기자)

연일 낮 최고 기온이 30℃ 중반을 웃도는 고온현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공공공사 계약조건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휴식도 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계약조건상 폭염을 공기연장 사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데, 폭염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시공사가 발주처로부터 인건비를 포함한 공사비 증가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25일 건설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가 폭염을 공사기간 연장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달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열사병 예방 기본수칙' 이행여부를 조사한 고용노동부가 위법사항 발견시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노동자와 사업자 모두 고용부의 지침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폭염을 이유로 작업자들을 쉬게 하고 공사를 일시 중단하더라도 기재부의 '공사계약 일반조건'상 공사기간 연장 사유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공사계약 일반조건에 따르면 태풍과 홍수, 기타 악천후 또는 전쟁이나 사변 등 계약당사자 간 통제범위를 벗어난 '불가항력 사유'로 공사기간이 연장되면 이에 대한 비용을 발주자가 부담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여기에 폭염은 해당되지 않는다.

공사기간이 수익과 직결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사를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

A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면 몰라도 중소형 건설사 입장에선 공기연장에 따른 손해를 최대한 감수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공사기간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진행한다"며 "특히나 하청업체가 원도급사에 공사비 내역서를 제출할 때 공기연장사유로 인정되지도 않는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 휴식 및 인건비 증가'분을 요청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현 제도상 폭염을 '계약당사자 간 통제범위를 벗어난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석했으며, 이에 대한 개정논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불가항력 사유라는 게 다소 애매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현행 문구를 보았을 때 폭염은 확실히 공기연장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해당 법안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공사기간 연장 사유로 폭염이 인정되지 않는 구조는 건설근로자 스스로도 휴식을 거부하게 하는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 폭염으로 공사가 중단돼 일을 못하게 될 경우 그만큼 급여가 줄기 때문이다.

이영철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노동부가 휴식의무를 지키라고 하지만, 작업을 중단하면 노동자는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한다"라며 "쉬고 싶어도 노동자들이 쉬지 않겠다고 손사래쳐야만 하는 현실을 (노동부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폭염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는 총 75명이었으며, 같은 기간 열사병과 열신신, 탈진 등 온열질환자는 총 7927명에 달했다. 

지난 24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4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에서 죽기 싫다 노동안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재환 기자)

jej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