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줘서 감사합니다"… 소년병과 소녀의 51년만의 만남
"기억해줘서 감사합니다"… 소년병과 소녀의 51년만의 만남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8.07.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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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남 진주시청 프레스센터에서 51년 전에 베트남 참전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던 김임순 씨가 당시 소년병이었던 석정운 씨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일 경남 진주시청 프레스센터에서 51년 전에 베트남 참전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던 김임순 씨가 당시 소년병이었던 석정운 씨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으로 오랜만 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19일 경남 진주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월남참전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던 소녀 김임순(72)씨가 소년병이었던 석정운(70)씨와 51년만에 만나 감동을 주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씨는 1967년 3월 3일 베트남전에 참전해 포화 속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의 나이는 겨우 18세.

맹호부대 26연대 혜산진 6중대 2소대 소년병으로 전투에 투입된 그는 눈앞에서 전우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불안과 공포에 떨던 그에게 희망을 준 것은 한국에서 김씨가 보낸 한통의 위문편지였다.

당시 진주에 있는 경남일보에서 근무하던 김씨는 월간 여학생지에서 '위문편지를 보냅시다'란 광고 글과 함께 적힌 장병 이름을 보다 석씨를 발견했고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김씨는 석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고국을 잊지 말고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등 내용을 적었다.

석씨는 전투 속에서도 김씨가 보낸 편지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 철모 속에 고이 접어 보관해 왔고,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김씨에게 받은 위문편지를 모두 챙겨 왔다.

하지만 귀국 후 집에 불이 나 편지와 사진이 모두 타버렸지만, 김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그대로 남았다.

그는  2013년 7월 당시 편지를 주고받을 주소였던 '진주 경남일보'를 떠올렸고 이 신문사에 '위문편지 소녀'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후 두사람은 전화로 통화하다 이날 51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석씨는 "두 살 위인 누님께서 보내준 편지가 당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며 "편지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에 김씨는 "우리 오빠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며 "그 어린 나이에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제가 보낸 편지가 힘이 됐다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날 김씨는 석씨에게 소설가 최인호의 '인연'이라는 책과 함께 손으로 엮은 예쁜 매듭 팔찌를 선물했다. 칠순을 넘긴 두 사람은 현재 건강이 좋지 않지만 이번 만남을 계기로 힘을 내기로 했다.

[신아일보] 고아라 기자

ar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