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의 이른바 ‘계엄령 문건’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 순방 중 특별지시를 통해 엄정 수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만인 지난 16일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부는 물론 군내에서 오고간 관련 문서와 보고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특별수사단이 공식적인 수사에 착수한 첫날 문 대통령의 지시를 두고 수사 관여 등 시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건이 비상사태에 대비한 단순 계획 차원이라는 주장과 유사시 실행을 염두에 둔 문건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고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이제 막 수사를 시작한 특수단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조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수단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청와대가 밝힌 만큼 특수단은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진실 규명에만 매진해야 한다. 정치적 상황과 군에 미칠 향후 파장 등에 대한 좌고우면 없이 필요하다면 성역 없는 조사를 펼쳐야 한다. 직접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요원들은 물론 필요하다면 전현직 장관에 대한 직접 수사에도 나서야 한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문건 작성을 자신이 직접 주도했다며 조만간 귀국해 특수단의 조사를 받겠다고 나섰다. 이를 두고 작년 3월 최초 보고를 받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의혹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들을 넘어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물론 송영무 국방장관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4월30일 청와대 기무사 개혁 회의에서 송 장관이 문건에 대해 언급했을 때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수사까지 필요할 수도 있다.불똥이 튈 수도 있다.
당시 정황상 청와대 참모진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는 변명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인식과는 너무 큰 괴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혁명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갖고 있는 군의 지휘관들이 있다면 이참에 발본색원해야 한다. 80년 민주화운동을 거쳐 2016년 촛불집회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땀을 요구했다. 그 희생과 헌신을 자양분으로 지금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것이다. 다시 총부리를 지켜야 할 국민에게 돌리는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해당 문건에 계엄사령관으로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한다고 명시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사관학교 출신의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배재하고 육사 출신인 장준규 육군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했다는 점은 군령 위반이나 군 지휘체계 무시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해군참모총장 출신을 국방부 장관에, 육군이 독점하다시피 해 온 합참의장에 공군참모총장 출신을 임명하는 등 육군 힘빼기에 주력해왔다. 이번 조사가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서 그치지 않고 군의 주도 세력 교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행보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군이 사랑받는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국민을 위협하는 군대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