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지난주 8350원으로 결정된 뒤 갈등과 진통이 격화되고 있다. 당초 결정 과정에서 사용자위원 전원이 불참하면서 첨예한 갈등은 예고됐다. 사용자와 노동자 양쪽 모두 불만을 토로하면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보다 빠르고 폭 넓게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저소득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소득보장을 하자는 취지였다.
유권자들도 이런 공약에 동의했다. 단순히 여유 있는 재벌 등 기업에서 비정규직 등의 처우를 개선해 취약계층의 소득을 올리는 정도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많다.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여러 ‘갑(甲)’들이 많은 ‘을(乙)’들을 위해 나누어야 한다는 정도의 이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갑과 을’의 대립이나 갈등만 촉발하는 게 아니라 ‘을과 을’ 또는 ‘을과 병’의 문제로 확산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반발이 거센 사람들은 편의점이나 영세사업자들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갑과 을’의 논쟁이 아니라 을들 간의 문제요 을과 또 다른 병과의 대립이고 갈등이다.
2년 연속 10% 이상 증가율을 보인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 각 계층에서 후폭풍이 거세지자 정부는 서둘러 긴급처방 마련에 나섰다.
16일 아침엔 하반기 경제운용을 놓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하반기 경제운용에 있어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을 줄 것이라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오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서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밝혔다.
그러나 첨예한 갈등이 예고된 상태에도 뒷짐졌던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인상 폭이 16.4%로 가파르게 오르자 영세소상공인들은 ‘생존 투쟁’을 벌였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산입범위 확대조치에 따른 인상효과 저하 등을 문제로 또다시 대폭 인상을 주장했다.
기업들도 5개월째 이어진 고용쇼크의 주범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지목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업을 옥죄지 말고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도 마땅한 보완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부로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골화 된 노동자와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 간의 대립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으로 문 대통령은 16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사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조속한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 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도 언급했다. 근로장려세제 대폭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 소득을 높여주는 보완대책 병행도 약속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일지 모르지만 정부의 이런 대안들이 갈등과 진통을 진정시키는 약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