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늘 들었던 말이 있다. 뭘 좀 잘못했거나 어설픈 짓을 하면 핀잔을 주면서 ‘야 이 축구야, 에이 축구 같은 놈’이라고 놀리곤 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몰랐고 어원조차도 알 수가 없었는데 운동으로서 축구 말고 그 때 축구라는 말은 실수나 바보 같은 모자람을 비난하는 부정적인 말이었다.
2018 월드컵축구가 조별 예선을 끝내고 8강전, 4간전으로 내달리면서 한 여름 밤의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조별예선에서 연달아 두 번을 져서 월드컵 네 번 연속 16강에 들었던 한국 축구가 조 예선 탈락의 위기에 몰려 그야말로 축구 같은 축구가 될 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 같은 축구를 보았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독일과의 절체적명 한 판 승부에서 우리 한국이 FA랭킹 세계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꺾었다. 둥근 축구공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월드컵 축구는 이미 올림픽 대회 이상의 지구촌 축제가 되고 있다. 경제적 효과도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올림픽효과를 넘어서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 한국의 경제효과는 26조원으로 추산 됐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11조를 투입해서 무려 54조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보았다고 개최국 브라질이 주장하고 있다.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약 32조쯤으로 추산되고 있다. 각각의 주장과 근거 그 이유는 다르지만 엄청난 효과임은 분명하다.
독일을 꺾어 세계 1위나라에게 70년 만에 조별예선 탈락을 안긴 파장도 만만치 않다. 우리로 인해 어부지리로 16강에 들어간 멕시코 시민들이 우리 한국에 보이는 열광적인 지지는 양국 간 단순호의를 넘어선다. 2000개 이상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의 경제활동에 셈 할 수 없는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우리 안에서도 변화는 크다. 풀죽은 경제에도 기운을 불어넣고 오랜만에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는 기쁨도 안겨 주었다. 비록 16강에는 못 들어도 촛불이니 태극기 하면서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묵어낸 쾌거였다.
이것이 모두 축구의 정치경제효과다. 축구경기에서는 축구장에서 뛰는 선수만 보이고 선수 중에는 골을 넣는 스타플레이어만 보인다. 그러나 나라의 명예를 걸고 11명이 함께 싸우는 월드컵 축구는 명예전쟁이다. 수비와 공격, 이를 연결하는 허리가 일사불란하게 작전에 따라 진퇴를 거듭한다. 뒤에는 감독과 코치 그리고 의무대와 지원팀이 한 순간 눈을 떼지 않고 가슴으로 함께 뛴다. 그래서 정정과 경제가 불안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남미에서는 이 명예전쟁의 승패가 나라의 정치 경제를 뒤흔든다.
그에 못지않게 축구사랑이 뜨거운 유럽에서도 그 정치경제 효과가 적지 않다. 지구촌의 명예전쟁인 축구는 이제 아시아 아프리카로 그 파장을 확대하고 있다. 아직은 축구에 관심이 낮은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정치경제가 안정된 나라가 축구도 잘한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이태리, 작은 나라 네들란드, 벨기에 다 그렇다. 젊고 패기만만한 마크롱이 이끄는 프랑스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하면 강변일까.
비록 16강은 못 갔지만 세계 축구역사에 기적으로 기록되는 한국의 축구에 비겨 정치와 경제는 어떤가. 치열한 무역전쟁에서 안간힘으로 버텨내는 대외경제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내수경제는 중국이나 일본, 대만 등에 비하면 지역예선 탈락의 위기로 보인다.
지금 우리정치는 한 경기가 끝났다. 완승 독식한 팀은 희희낙락 하는데 완패해 괴멸직전인 한 팀은 수 십 년간 열광하며 응원하던 지지관중이 실망하고 낙담해 모두가 돌아앉아 있다. 0볼만 뻥뻥 차대고서도 한 패는 주장완장 찼다고 으스대고 다른 패는 뺏겠다고 아귀다툼인 가운데 국회는 후반기 원구성도 못하고 헛돌고 있다. 아서! 16강에 떨어졌기로서니 정당은 간데없고 정파만 어지러운 여의도 정치가 축구를 탓 하랴. 에이 축구 같은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