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요즘 은행들을 보면 떠오르는 속담이다. 채용 비리혐의로 속앓이를 하던 은행들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고객에게 부당하게 이자를 취득한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금리조작’으로 규정하고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만약 소송절차가 이뤄진다면 은행 직원들은 검찰수사를 받게 되고 최악의 경우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될 수 있다. 이미 채용비리 혐의로 일부 관련 임직원들이 구속된 상태인데 이번 일로 은행 직원이 또 다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이번 사태는 금감원 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금감원은 9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출금리 부당산출 점검’ 결과에서 KEB하나은행과 한국씨티은행, 경남은행 3개 은행이 부당하게 이자를 수취했다고 밝혔다.
특히 심각한 곳은 경남은행이다. 경남은행은 최근 5년간 고객으로부터 25억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 취득건수가 무려 1만2000건에 달했다. 부당취득 금액과 건수를 평균으로 환산하면 고객 1인당 20만원가량의 돈을 더 거둬들인 셈이다.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부당취득 과정이다. 금융당국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남은행의 과당이익 취득은 가산금리 조작과 연관이 있었다. 경남은행 영업점에서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소득이 없거나 소득금액을 실제보다 적게 입력해 가산금리를 높게 책정한 뒤 적정 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챙겨 간 것. 경남은행은 부채비율이 250%를 초과하면 0.25%포인트, 350%를 넘으면 0.5%포인트를 가산금리로 부과하고 있다.
경남은행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5년 이상 지속적으로 적정 수준보다 높은 금리로 대출이 진행됐고 대출 건수도 이 기간 집행된 전체 가계자금 대출의 6%에 달해 지점은 물론 본사에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지점과 본사에서 이를 알지 못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은행 전산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된다. 경남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고객은 앞으로도 내부 가산금리 조정에 따라 언제든 적정 금리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 때 은행들은 기관이 아닌 기업으로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부터 한동안 은행은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 불렸다. 사실 이러한 주장 속엔 적잖은 의미가 담겼다. 크게는 공적인 역할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은행을 통상 규제산업이라고 부르는 데 이러한 규제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은행들의 이러한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사회적 반발이 커 얼마 못가 흐지부지 됐다.
당국의 규제를 벗어나려면 그만큼 책임감이 높아져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대안 없이 규제에서만 벗어나려고 하는 외침이 반대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의 도덕성과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은 금리산정 오류가 나타난 은행들에 대해 집중 검사를 진행하고 사고 경위를 따질 예정이다. 또한 허술한 전산 시스템도 꼼꼼히 점검할 계획이다. 은행이 왜 규제 산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은행이 또 자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