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특집] 정유업계의 이유있는 '탈정유'化
[창간15주년특집] 정유업계의 이유있는 '탈정유'化
  • 백승룡 기자
  • 승인 2018.06.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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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4사 영업이익으로 살펴본 비정유 추세·수익성
비정유사업, 수익안정성 및 부가가치 높아 '매력적'
배터리·MFC·잔사유고도화·합작법인…업체별 차별화
 

국내 및 해외 정유업계, 비정유사업에 박차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유업계는 '탈(脫)정유' 트렌드가 한창이다. 원유를 증류해 LPG부터 휘발유, 등유, 경유, 벙커C유 등 석유제품을 얻던 기존 정유사업에서 나아가 석유화학·윤활유 등 비정유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국내 정유4사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가운데 비정유부문의 비중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내 정유4사 중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에서 비정유부문이 50% 이상을 차지했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비정유부문 영업이익은 2조705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 3조2243억원의 64%를 차지했다. S-OIL의 경우 전체 영업이익 1조4625조 가운데 비정유부문이 52.6%인 7690억원이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33%, 32.7%(현대코스모 포함 시 38.3%)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GS칼텍스는 지난 2월 올레핀 사업 진출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선언했으며, 현대오일뱅크 문종박 사장도 지난달 "현대오일뱅크의 비정유부문 영업이익 비중이 2017년 33%에서 2022년 45%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두 회사 또한 '탈정유'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해외 석유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대 정유사인 'ExxonMobil(엑슨모빌)'은 이미 2000년대부터 석유화학 사업을 확장해왔다. 정유설비와 화학설비를 연계시켜 화학제품 생산을 극대화시킨 'Oil-to-Chemical(정유-화학 통합설비)'의 시초 모델을 싱가포르에 구축한 바 있다. 올해부터 에틸렌 150만t 설비를 새롭게 가동하며, 오는 2020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에틸렌 180만t 규모의 대형 크래커 투자를 추진 중이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Aramco(아람코)' 역시 한국(S-OIL)과 중국, 인도 등에 합작투자 방식으로 화학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정유사업, 외부변수에 취약…부가가치도 낮아

정유업계의 탈정유를 향한 이 같은 '일탈'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정유사업의 수익성이 외부변수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국제유가 급락이 가장 큰 계기가 됐다. 2014년 6월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최고점을 찍었던 국제유가는 그해 말 50달러 대까지 떨어지며 반토막 났다. 원유수입부터 판매까지 약 두달 가량의 소요기간 사이 유가는 계속 하락, 당시 정유업계는 비싸게 사들여 싼값에 판매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정유3사가 일제히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어닝쇼크'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정유업계는 국제유가와 환율 등 외부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정유부문에서 탈피, 석유화학 등 비정유부문에 주력하게 됐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제유가는 2014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70달러까지 돌파하며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지난 1분기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일제히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사이 원유 정제마진은 지난 2월 배럴당 6.32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3월 평균 6.15달러, 4월 평균 5.27달러로 계속해서 떨어졌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손익분기점인 정제마진을 배럴당 4~5달러 선으로 본다. 2014년과 달리 국제유가가 상승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낮아진 것은 유가상승으로 인해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유사업은 국제유가를 포함해 시장수요, 환율 등 외부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수익성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또 다른 이유로, 석유화학 및 윤활기유 등 비정유사업은 기존 정유사업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올해 정유4사의 1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비정유부문의 수익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비정유부문 매출은 3조4788억원으로 전체의 28.6%에 불과했지만, 영업이익은 3862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54.3%를 차지했다. S-OIL은 1분기 비정유 매출이 1조399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20.4%였지만, 영업이익은 1652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64.9%에 달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1분기 비정유부문의 매출 비중은 각각 24.2%와 12.3%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5%와 25.9%로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윤활기유 사업은 S-OIL(0.04% 감소)을 제외하고 전년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일제히 증가했다. 그러나 윤활기유 사업은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정유4사의 영업이익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이 같은 비정유부문의 수익성에 대해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제품은 범용제품인 원유를 원료로 삼아서 영업이익률이 주로 한 자리수에 그치는 반면, 석유화학 제품이나 윤활기유는 가공을 거쳐 부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4사 영업이익 및 비정유부문 비중.(자료=각사 제공)
국내 정유4사 영업이익 및 비정유부문 비중.(자료=각사 제공)

 

"비정유부문 투자, 꾸준히 증가할 것"

정유업계의 탈정유 트렌드는 올해도 한창이다.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은 아예 석유기업에서 에너지·화학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특히 배터리사업을 미래 전략사업으로 삼고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에서 휘발유·경유 연료사업을 펼친데 이어 미래 전기차 시대에도 배터리를 통해 연료사업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서산 배터리 2공장에 4개 생산설비를 비롯해 헝가리 생산공장 신설,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 2개 생산설비 증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난해 CEO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까지 10조원 이상 투자할 예정이다"며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는 2025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하고, 화학 부문에서는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GS칼텍스도 기존 정유·방향족 위주 사업에서 올레핀 사업 진출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선언했다. 현재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 약 43만㎡ 부지에 2조원대 금액을 투자해 연간 에틸렌 70만t, 폴리에틸렌 5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설계작업을 거친 후 내년 중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2년부터 상업가동될 예정이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기존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규 포트폴리오 구축'이라는 경영기조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것"이라며 사업확장의지를 밝혔다. GS칼텍스가 추진하는 MFC시설은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유분인 에틸렌·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시설로, 기존 석유화학사의 NCC시설과는 달리 나프타 외에 LPG나 부생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어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GS칼텍스는 이 같은 신규 석유화학 제품군으로의 사업영역 확장을 통해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추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OIL은 현재 'RUC&ODC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RUC(Residue Upgrading Complex)는 잔사유 고도화 시설로도 불린다. 원유에서 가스·경질유 등을 추출한 뒤 남는 값싼 잔사유를 처리해 프로필렌·휘발유 등의 제품을 생산한다. 같은 양의 원유를 투입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돼 원가절감과 수익성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ODC(Olefin Downstream Complex)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이다. RUC시설에서 생산되는 프로필렌을 원료로 활용, 연 40만5000t의 폴리프로필렌과 연 30만t의 산화 프로필렌을 만들어낸다. S-OIL 관계자는 "올레핀 하류부문 제품은 자동차부터 가전제품, 더 나아가 IT와 BT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며 "기존의 사업 영역에 올레핀 하류부문사업이라는 포트폴리오를 추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에너지 화학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사업방향을 설명했다. RUC 및 ODC 시설은 지난 4월 완공해 현재 시범운영 중으로, 올 하반기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한다.

현대오일뱅크는 화학업체 롯데케미칼와 합작법인 '현대케미칼'을 설립해 정유와 석유화학 간의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생산하는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신설 투자를 발표했다. HPC는 원유찌꺼기인 중질유분을 주 원료로 사용하는 설비다. 현대케미칼의 HPC는 납사 투입 비중을 40% 이하로 최소화하면서 납사보다 저렴한 탈황중질유와 부생가스, LPG 등 정유 공장 부산물을 60% 이상 투입해 기존 NCC(Naphtha Cracking Center) 대비 원가를 낮춘다. 이를 통해 현대오일뱅크는 석유제품과 방향족에 이어 올레핀계열 석유화학 제품까지 갖춰 정유·석유화학의 수직계열화를 한층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도 "현대오일뱅크의 비정유부문 영업이익 비중이 2017년 33%에서 2022년 45%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며 비정유 사업 확대를 예고했다. 현대케미칼은 2016년 11월부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 불과 1년 만에 지난해 매출 3조37736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매출액 상위 16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정유업계의 탈정유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업은 유가나 환율 등의 변수로 변동성이 큰 데 비해 비정유사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해 정유사들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비정유부문 투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