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
[데스크 칼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
  • 신아일보
  • 승인 2018.06.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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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태 신아 C&P 부장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8년 제16회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0:5로 네덜란드에 대패했을 당시 대표팀 수장을 맡고 있던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또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면서 “누군가 책임질 때이고 나의 몫이다”고도 했다. 당시 차감독의 실험적 전술이 패배를 불러왔다는 비난에서 경기도중 경질은 잘못이라는 비판여론이 동시에 있었다.

또한 네덜란드전에 앞선 멕시코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선제골을 넣고도 1:3으로 역전패를 당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백태클로 퇴장 당했던 하석주 선수가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았다. 멕시코전에서의 역전패 분위기와 차감독의 전술 실패가 네덜란드전 대패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로 20년 간 하석주는 멕시코전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지금도 자신 때문에 차범근 감독이 경질됐다는 자책감에 그를 피해 다닌다고 밝힌 바 있다.

27일 밤11시(한국시간), 이제 러시아 월트컵 조별리그 F조 예선에서 한국팀은 우승후보로 지목되는 독일팀과 마지막 경기를 펼치게 된다. 멕시코가 독일을 1:0으로 이김으로써 독일, 스웨덴의 경기 셈법도 조금은 복잡해 졌다.

스웨덴과 멕시코전에서 김민우, 장현수 선수의 실책을 두고 국민들은 경기의 패인으로 선수들을 낙인찍고, 신태용 감독에도 거침없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누군들 꿈의 그라운드에서 승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으며,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하지 않으려는 선수가 있겠는가?

국민들의 실망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20년 전 차 감독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축구가 더 발전하길 바란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월드컵 다음 경기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강호 포르투갈, 이탈리아를 꺽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뒀었으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16강에 진출했었다. 수 없이 많은 강팀들도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힘없이 16강 진출이 좌절되곤 한다. 아직 세계무대에서 실력차이는 보이지만 분명히 우리 축구는 발전하고 있다.

월드컵을 계기로 차감독이 선수시절에 독일무대에서 뛴 이후 뜸했던 유럽무대에 박지성, 손흥민 등이 진출해 전통적 축구 강호에서 모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또 하고 있다.

식었던 K리그에 관심도 다시금 높아졌고, 이에 따른 산업효과도 쏠쏠하다.

우리 국민이 월드컵에서 갖는 희열과 남다른 관심은 국민희망이란 말을 낳기에 이르러 있다. 다만 20년 전 경기패배를 두고 감독과 선수에 보냈던 야유와 비난은 별로 바뀌지 않은 듯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선수들은 자신들이 뛰는 최고의 무대에 서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해 왔을 것이다. 차감독도 그렇고 신태용 감독도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막상 꿈의 무대에 섰을 때 누군가는 실력차이를 실감해 위축될 수도 있고, 너무 앞선 의욕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관중은 응원을 보내는 것이다. 무조건 승자에게만 보내는 환호만이 경기장에 존재한다면 선수들이 겁나서 어디 제대로 뛸 수 있겠는가? 

신태용호도 지난 경기의 패배는 잊고, 최고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대범함으로 독일전에 임해주길 바란다. 축구로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라는 것을 잊지 말고 승패를 떠나서 선수와 관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독일전이 되기를 기대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쫄지’ 말자.

/고재태 신아 C&P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