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매봉산에서 발견된 시신이 지난 16일 실종된 여고생 A양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한창 꿈 많을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에 그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실종 10일만이다. 여고 1학년, 그녀의 아름다운 꿈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국가와 사회, 어른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는 A양과 같은 희생자가,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이 지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A양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되는 유력한 용의자는 아빠 친구인 김모(51) 씨다. 자살한 그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유류품을 감정한 경찰은 트렁크에 있던 낫에서 A양의 DN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만 보면 용의자인 ‘아빠 친구’가 거의 범인으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친구의 딸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만 그것으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는 죽어서도 자신이 저지른 패륜범죄의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속속드러나는 그의 변태 행각과 기행은 온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태연하게 살해 당시를 재연하던 모습은 ‘악마’를 연상케 했다. 이영학은 중학생 딸을 시켜 평소에 봐둔 친구를 영화나 보자며 꾀어내도록 사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영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을 보살피려는 딸 친구의 선심을 악용했다.
가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할 만하다. 이쯤 되면 세상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이나 딸 가진 부모들의 불안감이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 친구도, 친구 아빠도 다 못 믿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2015년 기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 중 친족을 포함한 ‘아는 사람’인 경우가 44.3%에 달했다. 이 가운데 ‘가족과 친척’이 가해자인 경우도 11.7%였다. 청소년 성범죄 피해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지인에게 피해를 당한 것이다. 살인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언론 보도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성에게 살해됐거나 살인미수 피해를 당한 여성 238명 중 78.5%인 187명이 애인이나 남편, 혹인 아는 주변인 등에 범죄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이들은 ‘아는 사람이 설마…’라는 허점을 파고 들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하겠어’라는 방심이 범죄를 부른 것이다. 방심한 피해자는 가장 손쉬운 범죄 대상이라고 범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학부모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당부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아는 사람까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자녀들의 위치를 파악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해외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커다란 위안거리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먼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무조건 조심하는 방법밖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 여성들이 안전한 세상, 나아가 온 국민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