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가 오르면서 저금리 시대에 풀렸던 가계대출이 연체율이 증가하는 등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직은 취약계층 등 약한 고리가 터지는 수준이지만 미국 FOMC가 12일 연방기금 금리를 재차 인상할 가능성이 커 금리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2금융권 1분기 연체율이 일제히 올랐다. 1분기 말 대출채권 연체율은 보험사가 0.52%, 저축은행이 4.6%로 나타났다.
보험사는 지난해 말 0.51% 대비 0.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가계대출 연체율은 0.52%에서 0.56%로 0.04%포인트 올랐다. 특히 신용대출 등이 포함된 주택담보 외 대출의 연체율이 1.30%에서 1.42%로 0.12%포인트 급등했다.
저축은행도 대출채권 연체율은 지난해 말과 엇비슷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은 4.5%에서 4.9%로 높아졌다. 이중 가계신용대출 연체율은 6.1%에서 6.7%로 0.6%포인트나 뛰었다.
최근 나타난 연체율 증가는 소위 ‘약한 고리’만 터지는 일종의 차별화다. 은행권 연체율은 오히려 개선된 반면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과 보험 등 2금융권의 연체율이 올랐다. 가계대출, 특히 담보 없이 사용하는 신용대출의 연체율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저금리 상황에서 풀린 대출이 금리가 오르면서 취약계층부터 옥죄는 일종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싼값에 돈을 빌려 썼다가 금리가 오르자 연체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1540조원을 돌파해 전년 대비 8.1%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사상 최고 증가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운 신용대출이 먼저 부실화 조짐을 보이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이 쪼그라든 것도 연체증가의 또 다른 이유다. 올 1분기 소득하위 20%인 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28만6700원으로 1년 전보다 8.0% 줄었다. 소득 하위 20~40%인 2분위 가계소득도 역시 4.0% 감소했다. 한 마디로 가계 소득은 줄어드는데 내야할 이자가 늘어나다보니 상환능력이 부족한 취약계층부터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체율은 1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지 않은 대출의 비율이다. 빚을 한 달 넘게 갚지 않았다는 것은 자금 사정이 잠시 나빠진 탓일 수도 있지만, 이자 부담이 너무 무겁거나 소득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갚지 못한 경우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연체율 상승은 채무자 입장에선 ‘신용불량자’로 불리던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늘었고, 금융회사 입장에선 대출채권의 부도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취약계층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은 가장 약한 고리인 제2금융권의 개인 신용대출부터 깨지기 시작한 것이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하면 2금융권의 담보대출 등 다른 대출이나 1금융권 또는 기업대출 등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하루 빨리 취약계층의 부채 부실을 막기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무턱대고 대출을 규제하거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으로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금융권에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압력을 키울 수 있다.
가계 소득 증가를 위한 대책도 중요하지만 커져가는 이자 부담 등을 경감하는 등 속도조절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