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맨발 투혼' 20년… 박세리, 그리고 세리키즈
[데스크 칼럼] '맨발 투혼' 20년… 박세리, 그리고 세리키즈
  • 신아일보
  • 승인 2018.05.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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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메이저 골프대회의 하나인 US여자오픈이 31일 미국 앨라배마주 쇼울크릭 골프장에서 나흘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올해로 73회를 맞는 US여자오픈은 유독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1998년 박세리가 우승하기 전까지 US여자오픈은 그저 TV 속에나 존재하는 꿈의 대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넘사벽’으로만 여겨지던 LPGA의 문을 두드렸던 박세리가 스물한 살 ‘어린 나이’로 우승컵에 입 맞추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되어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왔다.

박세리의 우승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나흘간 72홀을 돌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박세리와 동갑나기 태국계 미국인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은 18홀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17번홀까지도 팽팽하던 승부는 마지막 18번홀에서 갈리는 듯했다. 왼쪽으로 휘어지며 해저드로 향하던 박세리의 티샷이 가까스로 긴 러프에 걸리며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러프에 심한 경사까지, 샷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온 국민의 탄식이 절로 터져나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그 순간은 박세리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저드로 들어간 박세리는 멋지게 리커버리 샷을 해냈다. 샷을 한 뒤 캐디가 골프채를 당겨주자 겨우 해저드를 벗어날 수 있었던 장면은 경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세리가 빛나는 것은 멋진 리커버리 샷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저드를 빠져나오는 순간 온 세계는 박세리의 ‘하얀 발’을 주목했다. 쌔까만 얼굴과 까맣게 그을린 팔, 다리에 감춰진 더없이 하얀 발은 ‘LPGA의 개척자’ 박세리의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힘차게 박세리의 노력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당시 이른 새벽부터 TV 앞에서 숨죽였던 사람들에게는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며 감동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박세리의 하얀 발은 승리의 여신마저 감동시켰다. 잠시 박세리를 외면하는 듯 보였던 승리의 여신은 끝내 박세리에게 미소를 보냈다.

서든데스로 진행된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박세리는 마침내 길고도 지루했던 승부를 결정짓고 US여자오픈 우승컵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 92홀까지 가는 사투는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한 교훈을 남겼다.

박세리의 우승에 한껏 고무된 우리 국민들은 ‘하면 된다’는 DNA를 다시금 일깨우며 IMF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박세리 이후 19번 치러진 US여자오픈에서 한국골프는 김주연, 박인비, 지은희, 최나연, 유소연, 전인지, 그리고 지난해 박성현까지 9명의 우승자를 배출하며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 모두는 박세리의 하얀 발을 보며 골퍼의 꿈을 키운 이른바 ‘세리키즈’들이다. 이제 US여자오픈은 태극낭자를 떼어놓고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대회가 되었다. 박세리의 도전으로 시작된 태극낭자 세계 여자골프 정복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올해 우승자를 배출한다면 20번의 대회에서 절반의 우승자를 배출하는 우승확률 50%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때마침 US여자오픈이 열리는 것이 길조라고 한다면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걸까.

/이상민 산업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