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적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서러움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120여 년 전 조선은 몰려드는 외세에 내정마저 요동치던 때였다.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세를 등에 업은 개화파들이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봉건시대에 이어온 노비제, 조혼, 현물조세 등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청·러 등 주변국의 간섭으로 개혁은 실패했고,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과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의 결과만 낳았다.
1896년은 조선이 ‘건양’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원년이며, 그레고리력(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한편 봉건시대 수구파와 개혁파가 충돌하고 외세 소용돌이의 중심에 놓이게 된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 해에 개화파 내각에서 추진하던 독립신문이 4월9일 서재필, 주시경 등에 의해 창간됐다.
창간 해 5월 중에 발행된 독립신문의 논설 한 단락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와 닿는다.
‘목수가 헌 집을 고치려면 썩은 기둥과 서까래를 가려내 빼 내기 전에 새 기동과 새 서까래를 준비 했다가 묵은 재목을 빼어 내면서 새 재목을 대신 집어넣어야 그 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네 기둥이 튼튼히 서고 난 후에 도배와 장판과 유리창도 하고 좋은 물건도 방과 마루에 널어놓아야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이거늘 만일 그 목수가 새 기둥도 준비 하지 않고 옛 기둥이 썩었다고 그저 그 기둥을 빼 버리기만 하면 상쾌하기는 하나 새 기둥이 옛것 대신 들어서지 못해 집이 무너지기가 쉬운지라……(중략)……기둥도 고치지 않고 마당도 쓸지 않고 문간에 더러운 물건도 치기 전에 장판부터 고치려고 하니 집 다 고친 후에 다시 장판 깔기도 지금은 어렵게 됐으니 실상을 생각 하면 이것은 모두 그 서투른 목수들의 까닭이더라’
1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 우리의 사정도 안팎으로 녹녹치 않다.
간만에 불어온 평화의 바람은 미·중 관계 속에 실타래 엉키듯 얽혀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정부의 고민이 깊어져 가고 있다. 문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를 만나 중재에 나선 모양새지만 북측이 어떻게 나올지는 다들 안개속이다.
이런 와중에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은 당리당략만을 앞세워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개헌은 물론이고, 6·13 지방선거에도 정치와 정책은 보이지 않는 양상이다. 서민을 위하고 사람이 우선이라던 정부의 메아리가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국민들의 정서도 한편에선 엿보인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촛불에서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평화의 가치로 승화될 수 있는, 어찌 보면 절호의 기회일 수 있는데 도대체 정치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준비된 목수’가 눈에 띄지가 않는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1등이다. 또 전 세계 가전도 3대 중 1대는 우리나라 제품이다. 라면, 모자, 헬멧도 1등이다. 초코파이만 1년에 무려 5000억원어치를 수출한다. 심지어 미남대회 1등도 한국인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와 정책만큼은 유독 ‘2%부족’이 아니라 ‘200%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갖은 고초를 겪고 떨쳐 일어난 우리가 21세기에 똑같이 ‘서투른 목수’들을 우려하고 있다. 합심과 지혜를 끌어 모아 썩고 낡은 재료들을 걷어내고 잘 준비된 새로운 재료들로 교체해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집을 지어주길 ‘목수’님들께 간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