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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오늘을 보다
[기고칼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오늘을 보다
  • 신아일보
  • 승인 2018.05.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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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원 담마랑 원장 선일

어느 종교든 교주의 탄생일엔 성대한 잔치가 열린다.

불자와 기독교 신자가 많은 한국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나 ‘크리스마스’날은 이미 국경일로 정해진 휴일이다. 게다가 그 날을 위해 한 달 전부터 연등 점등식이나 성탄 트리 점등이 이뤄지고 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계신다면, 이러한 화려한 외부 행사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고통 받는 주변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실 법하다.

모든 사람들이 성인들의 말씀을 따라 생업을 팽개치고, 내면의 완성이나 주변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신도들은 그런 성인들의 말씀을 실천하고, 스스로 내면을 갈고 닦는 일에 전념하는 성직자들에게 먹고, 입고, 살아갈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이건 혹은 초하루 보름만이라도 생업에서 벗어나 성인들의 말씀을 그들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러면 성직자들이 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일러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일반 중생들에게 엄청난 행사나 대형건물을 요구했을까? 그보다는 ‘자비’와 ‘사랑’이 아니었던가?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은 덕목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혹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또한 둘이 아닌 가르침이다.

몸을 낮추어, 이것을 들여다보자. 상구보리는 무엇보다도 깨달음을 향해 출가제자가 나가야 할 본연의 일을 말하나, 그것에 그치지 말고, 동시에 자비로서 뭇 중생들을 보살피라 말한다.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살피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재가 신도로서 지켜야 할 5가지 덕목이 오계이고, 기독교에서도 10계명의 내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중 첫째가 ‘살생을 하지마라’다. 불교의 발생지는 농업지역이라 가축을 살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 ‘살생’이고, 예수님의 땅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살인’으로 범위를 축소시킨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TV뉴스에서는 첫 번째 계에서 말하는 일, 즉 성인들의 공통된 ‘사람의 길’을 가길 저버리는 사건들이 전 세계에서 연일 터지고 있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총기난사는 기본이고, 해서는 절대 안 될 존속 살인 사건까지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바로 이 나라에서 생기고 있는 일이다. 학교 교육에서 이미 ‘도덕’이라는 과목이 대학입시에 묻혀 사라진지 오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돼 목성까지 인공위성이 가고, 인공지능이 사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를 하는 시대라고 해도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이고, 또 살아갈 땅이다.

불교에서는 출가자가 고향집(사가)에 가면 안 되고, 부모와 혈육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과정일 뿐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스님(사리불 존자)은 사가의 당신이 태어난 방에서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완전한 열반에 든다.

붓다의 가장 수승한 제자가 붓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찾아 간다. 맏아들인 사리뿟다가 출가한 후, 줄줄이 여섯 명의 동생들이 모두 출가했기 때문에, 부처님은 물론, 그의 가르침과 그 제자들에 대해 엄청난 증오심을 가진 여인, 그로 인해 마음의 문을 아주 닫아 버린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 일곱이 모두 아라한이 되었는데도 부처님이나 가르침이나 스님들을 믿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 사리뿟다는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천신들조차 깨달음에 이르도록 인도한 내가, 만일 어머니를 바른 견해를 가진 분이 되도록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 먼저 세상을 하직함을 고한 후, 제자 500명과 함께 자신이 태어났던 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열반에 들 생각으로 고향으로 길을 나선다. 고향집 가까이에 있는 숲에서 ‘자신이 태어났던 방’에서 하룻밤을 묵겠노라고 기별한다.

그렇게 원망스런 맏아들 사리뿟다가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하룻밤 자겠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어머니는 깊은 밤에 천신과 제석천과 심지어 자신이 신봉하는 마하 브라마가 아들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보고서야 붓다에 대한 환희심과 기쁨이 차오름을 느낀다. 그 사실을 안 사리뿟다는 바로 그 때가 어머니가 법에 눈이 열릴 때임을 알고, 자신의 스승인 부처님의 계행, 지혜, 해탈, 그리고 해탈지견의 경지를 필적할 만한 이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음을 말해준다. 담마, 즉 가르침에 눈이 열린 어머니를 보고서야 ‘이제 나는 브라민 루빠 사리, 나의 어머니께 나를 낳고 키워준 보답을 했다. 그러면 이제 된 것 이다’는 생각을 하고 열반에 든다.

붓다의 최고 상수제자인 사리뿟다 스님이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 부모의 은혜를 갚고 떠난 일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사람의 첫째 도리는 남을 해치는 살생을 넘어, 자신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자비로 보살피는 것, 특히 아버지, 어머니를 진리로 인도하는 것이 행복임을 말하는 덕목일 것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은 38가지의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말씀하셨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존경하고, 어리석은 자를 멀리하며,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는 것,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길이라 하셨다. 왜냐하면 드넓은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은 배 이지만, 삶과 죽음을 뛰어 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혜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함께 있는 산천초목이 싱그러운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효‘를 생각 해보자. 행복으로 가는 길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종교가 우리 아이들을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부처님 오신 날에 다 함께 고민한다면 세상은 온통 희망이요,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다.

/불교문화원 담마랑 원장 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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