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 중에 연령주의라는 게 있다. 생물학적 성별이나 피부색깔로 사람을 차별하듯이 나이 많다고 해서 특정 연령층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걸 말한다. 연령주의는 노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주요 개념이다.
그런데 본래 우리사회는 요즘식의 연령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젊은이가 연로한 어른을 보살피고 연령에 따른 장유 관계를 존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노인들은 종적인 가족유대 속에서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오히려 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어른을 무시하지 않고 보호에 정성을 다하려는 ‘긍정적 성격의 연령주의’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노인에 대한 젊은 층의 인정어린 책임감과 과거식 장유 관계를 더 이상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제는 우리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노인에게 불리하고 불평등한 그런 연령주의 사회로 옮겨가는 중이다.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전통 가족윤리가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와 함께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당장 노인의 권위는 내리막길을 걷고 경제사정도 어려워졌다. 연세 높은 분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비위 맞추고서야 겨우 주변으로부터 조금씩 경제적 지원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노인들이 집안에서나 사회에서 이른바 구조화된 의존계층으로 전락해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노인들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연령주의를 맞이하고 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정말 심각하다. 노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한 겹 두 겹 쌓아올린 갖가지 경험을 인생 후반기에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한 건 사회 여기저기에 스며든 노인 배제와 경시 풍조이다. 실제로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세월의 주름이 깊이 패인 세대를 가볍게 생각한다. 그렇게 세상살이를 한참 앞서 시작한 노인 세대는 민폐집단으로 인식되고 만다.
어찌 보면 사람이 나이 먹어서 늙어가는 것은 개인의 생로병사 과정 중 일부분일 뿐이다. 노후에 마주치는 커다란 소외감과 고립감과 박탈감도 마찬가지다.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근심거리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노인의 지위와 역할을 어느 수준에 둘 것인지를 사회적 차원에서 규정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노인 문제는 사회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각종 제도가 고령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대중문화가 만들어가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노인 문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이 드는 건 누구든 다 겪어야 할 인생의 필연이다. 그걸 뻔히 아는데도 연령차별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은 별로 강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 성별이나 피부색깔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를 향한 비판적 자세에 비해 미적지근한 편이다. 그나마 아직은 나이 많다고 고령자를 불평등하게 몰아가는 관행이 만성화 단계에는 접어들기 전이라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에 먼저 도달한 세대를 어떤 이유에서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가정의 달에 느끼는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