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들은 왜 가면 뒤에 숨어 정의를 외칠 수 밖에 없나
[기자수첩] 그들은 왜 가면 뒤에 숨어 정의를 외칠 수 밖에 없나
  • 이정욱 기자
  • 승인 2018.05.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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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불만을 애써 참아왔던 대한항공 직원들이 급기야 직접 거리로 나섰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이 일어난 지 보름만의 일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집회 참가로 회사의 보복 등 혹시 모를 참가자 색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저항시위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면이나 마스크를 쓸 것을 미리 합의하고 집회장소로 모였다.

그런데 왜 거리로 나선 그들은 얼굴을 가려야만 했을까?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같은 비장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지난 4일 늦은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직원들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오너 일가의 경영 퇴진을 외치는 집회를 가졌다.

대한항공은 연일 터져 나오는 폭로와 제보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며 기업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온라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뒤틀린 것들을 바로잡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가자들은 일제히 “물러나라 조씨일가, 지켜내자 대한항공”이라고 연신 외쳤다.

이번 촛불집회 계획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한 익명 채팅방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그동안 어두운 그늘에 감춰진 채 묵인돼 왔던 오너 일가의 비리와 의혹들을 채팅방에 폭로하기 시작했고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갑질 논란과 수많은 의혹, 비리들은 전부 권력을 쥐고 있던 오너 혹은 일가에서 저질렀는데 정작 잘못한 사람은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건만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써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쉽게 말해 회사에 찍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는 잘못된 기업 문화가 그들을 가면 뒤에 숨게 만들었다. 한 가정의 아버지요, 아머니이기에 누구도 생존문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가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당당히 내세울 수 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자괴감이 그들을 가면 뒤로 밀어 넣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당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거리로 나선 그들이 하루빨리 가면을 벗어던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