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말이 있다. 사자성어 반포지효(反哺之孝)로 우리나라에서는 흉조로 여겨지는 미물인 까마귀마저 부모를 향한 효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러한 마음은 송강 정철의 훈민가에도 드러나 있다.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셨더라면 이 몸이 살아 있었겠는가, 하늘 같이 높으신 은덕을 어느 곳에 갚아 드리오리까…”라며 어버이에 대한 효의 마음을 애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버이 날이 코앞(8일)으로 다가온 가운데 반포지효와 훈민가가 더욱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갈수록 효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개념이 흐려지는게 현실이고 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효를 실천하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효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부모님을 섬기는 일이다.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관계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가운데 핏줄의 진함을 느낄 수가 있다.
공자가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 자식이 느끼는 부모에 대한 정, 이것은 하늘이 마련한 마음”이라고 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효도는 먼 곳에 있지 않고 항상 가깝고 쉬운 데에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서 부모의 뜻을 거슬리지 않는 것이 효도의 기본이다, 이에 더해 부모님이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도 효도의 한 길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효’가 실종된 것 같아 마음이 서글프고 답답하기 조차 하다.
인간의 기본적 소양보다는 이기적인 출세주의가 더 선호되는 분위기 속에서 가족이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지 않거나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가 하면 버림받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고, 도시에서도 홀로 어르신들이 관계당국의 적은 지원으로 겨우 생을 이어가기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조차 비일비재(非一非再)해 이제는 우리를 더 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다.
인성이 파괴된 결과다. 존속폭행은 중죄에 해당되며, 이러한 존속폭행은 반의사불법죄로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가 없다.
이같은 이유로 우리들의 부모들은 행여 자식들이 잘못될까봐 숨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냥 참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 신고는 무슨…”이라고 한숨만 내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 일부에서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방법으로 물질적 측면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 하다. 물론 부모님들도 봉투(용돈)를 선호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진정으로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용돈·선물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 한마디일 것이다.
1년 내내 아니 평생 부모 공경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가족 사랑이고, 가족 사랑이 곧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은 스스로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